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상을 살던 시니어들에게 디지털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연말연시가 되면 선물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무엇을 사야 할지 부터가 고민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옷이나 신발만 사 주어도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선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세월이 변해도 나는 여전히 ‘선물은 물건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차라리 현금이 가장 좋다고들 한다. 받는 사람이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아야 하는데, 막상 물어보면 대답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혼자 짐작하며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쇼핑을 나선다. 타이슨스 코너, 페어옥스 몰, 아마존 닷컴… 오프라인 매장과 인터넷을 오가며 서치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미리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캐시가 제일 좋아요.”
하지만 내 마음은 좀 메말라 보이고, 정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해 주고 싶어 다시 매장도 다니고 인터넷도 뒤졌지만,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끝내 찾지 못했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 묘수가 없었다.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현금으로 주자고 마음을 정하니 일이 아주 간단해졌다. 고등학생에게는 백 불, 대학생에게는 이백 불, 성인에게는 삼백 불. 이렇게 정하고 나니 은행에 다녀오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선물 때문에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니어들에게 오백 불, 천 불씩 준다. 그렇게 받아 보니 내가 준 금액과 받은 금액이 거의 같다. 기분 좋게 “이만하면 큰돈이지” 하며 주었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보니 내 주머니 돈은 그대로였다.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아내에게도 천 불을 주었는데, 아내 역시 내게 천 불을 주었다. 거금을 주어서 기분이 좋고, 거금을 받아서 또 기분이 좋았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모두가 이렇게 현금으로만 선물을 한다면, 상인들은 어떻게 될까? 크리스마스 특수를 기대하며 준비했을 텐데, 예전 같은 특수는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받은 현금으로 언젠가는 물건을 사겠지만, 꼭 크리스마스에 사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처럼 물가가 비싸고 실업률까지 높아진 시대에는 선물 비용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물건을 선물 받으면, 그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준 사람을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현금에는 그런 추억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구식 노인인가 보다. 아내는 더하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 누가 주었는지, 심지어 본인이 직접 산 물건조차도 “그때 여행 가서 샀잖아” 하며 또렷이 기억한다. 그런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즐거워한다. 그래서 현금 선물은 아내에게는 더 서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가장 경제적인 선물이 꼭 가장 따뜻한 선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상은 그렇게, 효율적인 방향으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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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