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첫눈은 언제나 기쁨을 안고 설렘으로 가슴에 내린다. 바람은 고요히 숨을 죽이고 나뭇가지에 귀를 기울였다. 한 순간에 멈추는 세상은 눈이 보내는 고요함을 품었고 그 침묵은 아름다운 겨울의 노래와 축복으로 다가온다.
겨울이 되어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으면 몸을 감싸주어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를 느낀다. 지난 밤, 찬바람이 새어들까 꼭꼭 닫아 두었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세상은 고통을 덮고 평온함과 화합을 가져오는 흰 눈이 하늘과 땅을 덮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앞마당에 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은 순결한 마음을 가진 눈꽃을 잡아본다. 혀를 내밀어 숨소리도 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의 하얀 눈(雪)이 두 눈(眼)에 가깝게 다가오는 기쁨의 눈, 순간의 반짝거림 속에 어린 시절의 겨울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
그 때의 겨울은 조용한 마음을 가진 축복이 집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감나무 가지에, 지붕에 소복이 눈이 쌓였다. 마당에 산더미처럼 눈이 쌓일 때는 신의 축복을 바라보며 그것을 쓸어 모으는 일을 정말 좋아했다. 눈을 모아 둥굴리며 눈사람을 만들어 세상을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한 친구를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솜털 같은 눈을 마주하고 축복의 편지라 하며 서로가 경쟁하듯 후후 불어 하늘로 띄우던 일, 그 기쁨의 눈이 내리고 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그곳에서도 흰 눈이 내리고 있을까.
눈에 쌓인 옛 고향의 경치는 한 점 그림이었다. 우리 집에는 산과 들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새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들려오곤 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지휘자가 되어 집 앞의 논두렁에서 놀았다. 함께 놀던 개구쟁이들의 함성이 하늘로 흩어져 하얀 눈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고사성어에 영설독서(映雪讀書)라는 말이 있다. 눈에서 반사되는 빛을 이용해 책을 읽었던 중국 진나라의 학자 손강(孫康)의 일화를 통해, 눈이 내리는 모습을 학문적 고난과 열정을 상징하는 비유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고사성어다.
많은 눈이 내릴 때는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손강처럼 눈의 반사되는 빛을 따라 학업에 열중했던 나의 친구… 눈을 사랑했던 그는 눈의 마음을 얻지 못해 떠나간 친구, 하늘의 어느 곳에서 그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지 궁금증을 눈꽃에 담아 띄우고 싶다.
눈 내리는 날의 풍경화 속에서 멈추는 고요의 마음을 다듬어본다. 해마다 달려가는 세월, 이제는 고향을 떠나 인생의 끝자락에서 도시의 찬란한 불빛과 높은 건물 사이로 내리는 그 눈빛이 내 마음에 쓸쓸히 내리고 있다. 매년 시작되는 겨울의 문턱에서 나의 마음은 다시 고향 땅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고향의 숨결이 들리는 환상 속의 새소리, 검은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흩어져 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 속을 바라보며 옛 기억에 머물고 싶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눈이 내리는 모습은 단순한 겨울의 풍경이 아닌 것 같다. 마음속을 다스리는 하늘의 계시이며 그것은 마음속의 고향이며 하늘의 축복인 듯하다. 고요 속에서 내리는 눈, 그 흰 빛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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