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캐슬린 파커 칼럼] 지미 라이의 마지막 희망

2025-12-26 (금) 12:00:00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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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언론 재벌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지미 라이의 ‘가짜 재판’이 855쪽 분량의 유죄 판결로 끝났다. 내년에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형량 선고는, 78세의 라이에게 체포된 지 5년 동안 살아온 방식 그대로 죽음을 맞게 할지도 모른다. 옷장만 한 크기의 감방에서, 독방에 수감된 채 가톨릭 신앙만을 위안 삼아 말이다.

그는 종신형에 직면해 있으며, 많은 이들은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당뇨를 앓고 있는 라이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의 딸 클레어 라이는 지난주 월요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때 누구보다 활력 넘쳤던 아버지의 현재 모습을 전했다. 그녀에 따르면, 아버지는 심각한 체중 감소를 겪었고 심장 질환과 각종 감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력과 청력까지 잃어가고 있다. 면회 때마다 그녀가 보는 것은 변색돼 떨어져 나가는 손톱, 썩어가는 치아였다.

이 모습은 밀항자로 어린 시절 홍콩에 도착해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하고, 결국 자유로운 언론과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친민주 성향의 신문 애플 데일리를 창간했던, 호방하고 인생을 즐기던 억만장자 라이의 과거 모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국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당시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 진실과 정의, 보편적 자유에 대한 약속으로 널리 존경받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중국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인 2020년 6월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강행 도입했다. 이 법은 분리주의, 전복, 외세와의 공모를 범죄로 규정했다. 라이에게 적용된 혐의는 외세와의 공모 및 선동이었다.


하지만 라이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한 차례 낸시 펠로시(민주·캘리포니아) 연방하원의원과 당시 부통령이던 마이크 펜스를 만난 적은 있지만, 그가 기소된 활동들은 국가보안법 시행 이전의 일이었다. 라이의 국제 법률팀 소속 변호사 조너선 프라이스는 월요일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시험 사례였다”며 “홍콩에서 법치가 죽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지미 라이의 처지는 베이징에 맞서 자유롭게 발언하려는 다른 활동가와 언론인들에게 중국이 보내는 경고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인도적 이유로 라이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베이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할 말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라이의 평결이 내려지기 하루 전인 일요일, 홍콩 민주당은 해산을 선언했다.

라이가 시민권을 가진 영국조차 그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몇몇 고결한 예외를 제외하면 영국은 거의 침묵에 가까웠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중 무역 협상 과정에서 라이의 처지를 언급하며 더 믿을 만한 옹호자로 나섰다. 분명히 말해, 라이의 운명은 전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국경없는기자회(CPJ) 대표 조디 긴즈버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적으로 수감된 언론인의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은 지미 라이 개인과 그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언론 자유와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라이의 고통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는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거대한 문어처럼, 중국은 기술과 투자, 인수합병,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규모 ‘일대일로(BRI)’ 구상을 통해 전 세계로 촉수를 뻗치고 있다. 2013년 시작된 일대일로는 고대 실크로드를 본떠 육상과 해상 무역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초기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지난 10년 사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38만4,000에이커의 농지를 매입했고, 미국 최대의 돼지고기 생산업체인 스미스필드 푸즈까지 인수했다. 이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특히 이들 토지 매입 상당수가 군사 시설을 포함한 민감한 지역 인근에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해당 자산들을 통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적어도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이주민들은 언론을 적대시하는 현 행정부의 ‘유행하는 태도’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언론 자유를 포함한 우리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자유는 표현의 자유에서 시작되며, 표현이 검열되거나 통제되는 순간 끝난다. 이는 홍콩에서, 그리고 역사 속 다른 수많은 사례에서 이미 증명돼 왔다.

라이의 유일한 ‘죄’는 자유에 대한 충성, 가톨릭 교회에 대한 헌신, 그리고 떠날 수 있었음에도 홍콩에 남아 동료 자유 투사들과 함께 감옥행을 택한 흔들림 없는 용기였다. 오늘날 그의 석방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을 경멸하는 중국과 같은 시각을 공유하는 한 인물에게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와 중국은 아직 몇 가지 무역 협상 세부 사안을 남겨두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미 라이의 자유이기를 바랄 뿐이다.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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