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자락에서 배우는 존재의 희미한 진실을 찾아 떠난다. 12월의 고요한 오후, 책상 위 벽면에 걸린 캘린더의 마지막 장이 바람결을 따라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얇디얇은 종잇장을 바라보며 시간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지만 우리가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뒤를 돌아보는 데서 비롯된다. 이 캘린더의 마지막 장은, 그래서 단순한 날짜의 나열이 아니라 한 해의 허무와 충만, 무상함과 은총이 뒤섞인 조용한 철학적 표지판이다.
첫째로 ‘남아 있음’의 존재론적 의미를 사유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그토록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그 잎새가 단순한 회화적 기교가 아니라 ‘남아 있음’의 가치에 대한 가장 원초적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떨어져 간 모든 잎새들보다 마지막까지 버틴 단 하나의 잎새가 한 생명을 돌아오게 하고 절망을 다시 희망으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대부분은 잊히고 사라지지만 어떤 사람, 어떤 순간, 어떤 말, 어떤 기도, 어떤 결심은 끝까지 남아 우리를 붙잡는다. 그 남아 있음이 곧 존재의 의미가 있고 새로운 선택을 가능케 하는 조용한 힘이 되지 않았던가.
둘째로 떨어져 간 날들의 철학적 흔적으로는 한 해 동안 사라진 날들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내 존재의 지층에 퇴적되어 뚜렷한 의미의 결을 만들었다.
어떤 날은 환희였고, 어떤 날은 무기력의 침잠이었으며, 어떤 날은 불확실성에 몸을 맡긴 채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철학은 말한다. “인간은 지나간 시간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그 시간을 해석하는 방식이 곧 인간의 품격을 만든다.”고... 지나간 날들은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의미를 빚어내고 있었다. 기쁨과 상실, 분투와 쉼이 모두 뒤섞여 내 이름 속에 둥지를 틀고 말이다.
셋째로 존재의 조용한 토대들은 감사의 대상들이다. 감사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 감사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문득 의식 속에 떠오를 때 비로소 시작된다.
가족―존재의 뿌리를 이루는 관계성의 가족은 생물학적 연결보다 더 깊은 존재론적 울림을 가져다 주었고, 사랑의 뿌리가 되었다. 내 삶의 무게 중심을 잡아 준 동료와 인연들- 사유의 지평을 넓힌 관계들의 질문과 표정,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 나의 학문과 신앙, 그리고 인생을 확장시키는 보이지 않는 철학적 대화자들이였다.
또한 신앙의 공동체- 내면을 지탱해 준 보이지 않는 구조물로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붕괴로부터 지켜 준 보이지 않는 구조물과 같았다. 목사의 기도와 말씀은 삶의 심연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하찮고 사소한 것들 - 존재를 깨우기에는 사소한 기적들 즉 빛 한 조각, 책 한 페이지, 커피 향기, 낙엽의 마른 소리...
우리는 이런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의해 하루를 버티고, 삶의 온도를 회복하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알게된 또 하나의 철학적 결론은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자’는 것이다. 감사의 목록 어디에도 없었지만...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내로써 창조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오늘처럼 또렷하게 이해한 적이 없다. 수 많은 날의 무게로 지치고 흔들리며 견디어 걸어온 나, 불안과 두려움을 마음 깊은 곳에 숨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해 온 나. 그 모든 시간들을 “용케도 무사히 잘 건너온 나”라고...이제는 조용히 불러 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올 한해 삶의 무게에도 흔들리지 않고 참 잘 견뎠고, 끝까지 나답게 남아 있어주어 고맙다.” 자신에게 건네는 이 작은 격려가 올해 내가 얻은 가장 깊은 철학적 깨달음일지 모른다.
그 말 한마디는 마지막 잎새보다 더 깊고 따뜻하게 내마음 속으로 스며든다. 시간의 끝자락에서 얻는 지혜 철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음’이라는 조건에서 인간의 숙명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나이가 깊어질수록 이렇게 생각한다. “되돌릴 수 없음”은 슬픔이 아니라 은총이라고... why not? 만약 시간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이토록 진지하게 사랑하지도, 깊이 감사하지도, 신중하게 살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캘린더는 역시 지나간 시간 너머에 있는 존재와 삶의 의미를 조명하며, 이 마지막 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가 시작되는 문턱이며, 그래서 인생의 본질을 조용히 응시하게 만드는 철학적 창문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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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전성결대학장·교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