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과 숲에 둘러싸인 마을은 저만의 세상에 누워 평화를 즐기고 있다. 미주리주의 작은 마을 한니발, 그곳에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은 미시시피강이 흐른다. 그의 대표작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생활≫ 속에는 언제나 이 강이 등장한다. 허먼 멜빌이 “미시시피강은 먼 곳의 물줄기를 모아 세계의 바다로 쏟아 붓는다”고 한 것처럼, 이 강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삶과 문화가 교차하는 상징이었다.
한니발 마을은 지금도 마크 트웨인의 그림자 아래 있다. 거리의 간판과 기념품, 벽화까지 모두 ‘톰 소여의 마을’을 닮았다. 그가 서문에 남긴 말처럼 “이 책의 사건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쓰였지만, 그 속에는 세상에 대한 냉철한 풍자와 성장의 아픔이 숨어 있다.
톰은 숙모의 잔소리를 피해 2층 창문으로 달아나고, 베키에게 사랑의 낙서를 전하며, 동굴에서 길을 잃는다.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라는 벌을 교묘히 다른 아이들에게 떠넘기며 간식까지 얻는 장난꾸러기. 헉과 함께 공동묘지를 헤매고 살인 사건을 목격하는 장면에서는 모험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의 친구 헉과 노예 짐은 어른 사회의 위선에 맞서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한니발의 마크 트웨인 박물관에 들어서자, 그의 서재가 재현되어 있었다. 흰 양복을 입은 트웨인이 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다. 맞은편 의자에는 멜빵바지를 입은 톰이 앉아,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 뒤에는 한 소년이 그의 어깨 너머로 책을 엿본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이야기의 탄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카디프 언덕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톰과 허클베리 핀의 동상이 서 있다. 그들의 얼굴은 바람에 닳았지만, 여전히 생동감이 있었다. 나는 계단을 따라 등대로 올랐다.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정상에서 바라본 미시시피강은 푸른 숲을 안고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어린 샘(사무엘 랭혼 클레멘스)은 돌멩이를 굴리며 놀았고, 증기선을 바라보며 세계로 향하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 자신도 수로 안내인이 되어, 혹은 작가로서 세상을 항해하리라 상상했을 것이다.
트웨인은 정규 교육을 오래 받지 못했지만, 독학과 여행, 기자 생활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미국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해학으로 풀어내며 ‘미국적 리얼리즘’의 기틀을 세웠다. 헤밍웨이가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필명 Mark Twain은 선박 항해용어로 ‘두 길(12피트)의 깊이’를 뜻한다. 말 그대로 그는 미국 문학의 수심을 재던 사람이었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강가에 서니 바람이 물결을 쓰다듬는다. 톰과 헉이 뗏목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들의 모험은 끝났지만, 미시시피강은 여전히 흘러가며 이야기를 이어준다.나도 그 강가에 서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강을 따라 흘러가고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어낸 그의 삶처럼, 나도 ‘거의’가 아닌 ‘확실한’ 단어를 찾아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의 마음에 한 줄이라도 남는다면, 그것이 나의 미시시피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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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