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건 매카들 칼럼] 지나간 시대의 낙관주의

2025-11-17 (월) 12:00:00 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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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포스트는 1916년에 자신의 미국 횡단 자동차 여행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현대적 에티켓 칼럼의 창시자이자 사교계의 거장으로 통하던 포스트는 올바른 매너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기에 앞서 ‘자동차로 금문교까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100여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그녀가 단지 예리한 감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찾아내는 유능한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관심사인 사회기반시설과 우리가 더 이상 기반시설을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포스트는 근력이 동력으로 대체되고, 농촌에서 도시로의 집단이주가 일어나면서 공공 기반시설의 대부분이 갖추어졌던 1870년과 1970년 사이의 기간을 일컫는 ‘특별한 세기’의 초반에 태어났다. 1916년까지만 해도 사회기반시설의 상당부분은 미래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철도망이 대부분 완공됐고 도시 지역의 수처리가 비약적으로 개선됐으며 전기사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으나 도시 바깥쪽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전화 네트워크는 원시적이었고 포장도로는 극히 드물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농촌지역에 거주했다. 도시화율이 50%선을 넘어선 1920년까지 미국은 4년의 시간과 한 차례의 전쟁을 남겨둔 상태였다.

따라서 자동차를 이용한 1916년 당시의 미국 횡단여행은 건조한 날씨에는 먼지를 풀풀 날리고, 비라도 내리면 진흑탕으로 변하는 비포장도로를 헤쳐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포스트는 도로가 마르거나 정비될 때까지 기다리며 며칠, 혹은 몇 주동안 호텔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인구밀도가 낮은 서부에서 그녀는 차대 하부와 지면 사이의 간격인 10인치보다 더 깊게 패인 진흙 고랑을 통나무 막대기로 메꾸어가며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는 당시의 좌절감을 WASP 특유의 절제적인 표현으로 눙쳤다. 그러나 통나무 막대기를 구해 여러 개의 고랑 사이에 깔아놓거나 거의 움직이지 않는 무개차에 앉아 사막을 통과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또한 포장도로 위로 다시 올라섰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지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생각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의 글에 나타나는 다른 것, 즉 포스트 시대의 미국을 관통하는 믿을 수 없는 낙관주의 및 야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서부지역은 드넓은 초원에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미래의 도시가 들어서면서 젊음의 폭발적인 성장기를 맞고 있는 듯 보인다.

낙관주의에 대한 갈망,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낙관주의를 다시 느끼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지난주 칼럼에서 필자가 비판했던 공화당 향수 정치의 핵심이다. 민주당의 향수 정치 역시 같은 힘이 작용하고 있어 필자가 비판할 수 있었던 주제다. 공화당은 지난날의 관세, 공장 일자리와 핵가족을 그리워하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20세기의 복지국가 확장과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재현하고 싶어한다. 기후정책을 ‘그린 뉴딜’이라 부르며 그 시절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이와 동일한 연장선 위에 있다. 결국 두 그룹 모두 미국이 젊고 희망에 차 있으며 비범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그 시대의 정신을 되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에밀리 포스트의 미국 횡단여행을 따라가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미 우리는 그런 변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오래된 농담이 있다. 한 엔지니어가 벽돌담에 머리를 찧어대는 동료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가” 물었다. 그러자 동료 엔지니어는 “멈출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불편함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상당한 안도감을 느낀다. 잠옷차림으로 얼어붙은 마당을 가로지르는 대신 맨발로 조용히 실내 화장실로 갈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 그을음 가득한 등유 램프를 깨끗한 전등으로 교환할 때의 상쾌함, 울퉁불퉁한 흙길에서 덜컹대는 차를 운전하는 대신 포장도로 위를 미끌어지듯 달릴 때의 편안함.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일회적 전환에 불과하다. 일단 한번 경험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이전처럼 달콤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

두 번째 욕실을 만들거나 좀 더 발전된 전력망을 개발한다든지 더 큰 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이전의 감흥을 되살리려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기반시설을 더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새로 지은 기반시설의 한계효용은 줄어든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집에 욕실이 없다면 하나를 새로 설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이미 두 개의 욕실이 있다면 콧잔등에 분을 바르기 위해 세 번째 욕실을 짓는 것은 번거롭고 건설비만 축내는 가치없는 일이 아닐까?

거대한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에 금문교가 세워지자 긴 페리 여행이 빠른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다리를 확대하고 근처에 또 하나의 다리를 추가로 선설한다면 통행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페리에서 다리로 처음 옮겨갔을 때처럼 빨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100년 전의 미국인들에 비해 미래에 대해 기대감이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왜 지금은 무언가를 해내는데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는지 설명해준다. 정치적 타협이 어려워진 이유는 우리가 삶을 뒤바꾸는 대변혁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프라 건설에 반대한다는 게 아니다. 사회기반시설은 더욱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왜 정치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되었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포스트의 미국이 갖고 있던, 혹은 현재 중국이 선보이고 있는 “하면 된다”는 정신(can-do-spirit)을 되살릴 수 없다는 건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포장도로가 없는 나라를 자동차로 횡단하는 것처럼 속터지는 일도 없을 터이다.

<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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