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상청앵(馬上廳鶯) (말 위에서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 간송미술관
이른 봄날 나들이 실바람 볼 간지럽히고
가는 봄비 내리니 강과 하늘 하나 되었네
냇가의 버드나무 푸른 가지 늘어지고
또각또각 말 걷는 소리 시동의 발걸음 소리
어디서 들려오는 꾀꼬리 노랫소리
발걸음 멈춰 되돌아보니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 한 쌍
짝을 찾는 것인가 봄을 노래하는 것인가
한참을 바라보며 꾀꼬리와 봄을 즐기노니
소리 없는 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르네
단원 김홍도의 작품 중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그림이다. 단원은 보슬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한 어느 이른 봄날, 노선비가 말을 타고 시동(侍童)과 함께 강뚝을 따라 한가로이 봄나들이 나온 모습을 그렸다. 화면을 사선(斜線)으로 가르고 강뚝 너머의 보슬비 내리는 희뿌연 공간을 너른 여백으로 처리하여 말 탄 선비와 이제 막 잎이 돋아나는 버드나무를 돋보이게 하고 화면 좌측 상단에 화제시를 넣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게 하였다.
노선비가 버드나무 밑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꾀꼬리 한 쌍이 청아하게 지저귄다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한 쌍의 꾀꼬리를 찾아보시기 바람). 보슬비 내리는 허공으로 퍼지는 꾀꼬리 소리에 선비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고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꾀꼬리를 찾기 위해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바라보는데 시동도 함께 바라본다. 이는 잠행이부지습의(潛行而不知濕衣 - 몰래 가는데 보슬비에 조금씩 옷이 젖는 것도 모르네)의 경지이다. 희뿌연 하늘은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 그림 왼쪽 위의 제시(題詩)는 다음과 같다.
佳人花低篁千舌(가인화저황천설)/ 韻士樽前柑一雙(운사준전감일쌍)
歷亂金梭楊柳崖(역란금사양류애)/ 惹烟和雨織春江(야연화우직춘강)
아름다운 여인1)이 꽃 아래서 천 가지 목소리로 생황(笙篁)2)을 불고
시 짓는 선비는 술상 앞에 귤 한 쌍을 올려놓았네3)
금빛 북(梭)이 수양버들 가지 늘어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니
뽀얀 연기처럼 보슬비 내려 봄 강에 비단을 짜는구나
꾀꼬리가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모습을 옷감을 짤 때 왔다 갔다하는 북으로 비유한 것이 멋들어진다. 보슬비 내리는 봄날의 정취(情趣)를 더 이상 아름답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제시 옆의 글은 기성유수고송관도인(棋聲流水古松館道人-바둑소리, 흐르는 물소리, 노송 드려진 집의 도인)인데 단원의 절친 이인문(李寅文)이 이 그림은 단원이 그린 것을 증명한다고 쓴 것이다.
1) 꾀꼬리를 의미, 2)생황-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의 하나, 3) 노란색 꾀꼬리 한 쌍의 아름다운 모습.
<
최규용(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