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야기 가득한 ‘조선명화’ 읽기

2025-09-30 (화) 12:00:00 최규용(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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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도(船遊圖)

이야기 가득한 ‘조선명화’ 읽기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뱃놀이)
국립중앙박물관

뱃놀이 나왔는데 물결이 험하구나
작은 배 뒤뚱이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물안개 자욱하여 동서남북 모르겠네
동쪽이면 어떠하며 서쪽이면 어떠하리

비스듬히 누운 현재(玄齋) 어찌 이리 태평한가
멋모르고 따라온 벗 걱정이 태산일세


삿대잡은 뱃사공 땀을 뻘뻘 흘리는데
뱃놀이에 책과 수석(水石)은 왜 가져오신 거요

갈 곳 없는 단정학(丹頂鶴)은 앉으려고 애쓰네

영조 시대의 사대부 문인화가였던 현재 심사정은 겸재 정선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는데 집안이 역모에 연루되어 멸문의 화를 당하여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 팔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중국의 절파화풍(浙派畵風-강렬하고 힘찬 필치, 역동적인 구조의 화풍)과 남종화풍(南宗畵風-부드러운 필치, 이상적인 정신세계 표현의 화풍)을 받아들여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였다. 당시 문인이며 회화평론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은 심사정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그림이 겸재를 뛰어 넘는 것이라 높이 평가하였다.

1764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친구와 함께 뱃놀이 나갔던 장면을 그렸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수묵담채(水墨淡彩)의 먹선, 시원하게 그려진 푸른 물과 거친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배 한 척이 짙은 안개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아가는데, 배에 탄 두 선비는 느긋하게 누워 구경하고 있으니, 그들은 이미 세상풍파를 넘어선 신선의 경지에 있는 듯하다.

배에 실린 책, 고목, 매화는 선비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며, 선비의 상징인 단정학(丹頂鶴-붉은 머리의 학)이 배 위의 고목 가지에 앉으려 하나 바람이 불고 배가 흔들려 앉지 못한다. 거친 세상의 파도 속에서도 학문과 고고한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작가의 마음, 즉 평생을 가난과 역경 속에 살아야 했지만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한 심사정의 달관한 마음이 엿보인다. 또한 그림 속에서 삿대질하며 거친 물살을 헤치고 배를 젓는 뱃사공의 쩔쩔매는 모습은 심사정이 겪어야 했던 고단한 삶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50여 년간, 우환이 있거나 즐겁거나 하루도 붓을 쥐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가 몸이 불편하여 보기가 딱할 때도 물감을 다루며, 궁핍하고 천대받는 쓰라림이나 모욕을 받는 부끄러움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라고 말했다(현재거사묘지명 (玄齋居士墓誌銘)). 그가 강한 정신력을 가진 진정한 예술가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그림이 갖는 독창성과 절제, 선비의 이상을 상징하는 구성, 색채의 아름다움과 품격은 심사정의 <선유도>를 명화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최규용(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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