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그는 고교시절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니 아버지는 자기를 낳아 놓고는 내 알바 아니다 라는 듯이 고향인 케냐로 가버렸고, 어머니는 또 자기의 행복을 찾아 인도네시아로 개가해서 떠나 버렸으며 보호자인 외조부는 늙고 병들어 무능했다.
그런 상황속에서 “나는 속절없이 버림받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고민을 하다가 마약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농구 코치에게 걸리고 말았다.
방과 후 선생님은 오바마를 불러 놓고 “임마 너는 버림받은 놈이 아니고 너의 총기와 재능을 보면 내가 봐도 너는 분명히 선택받은 놈이야, 현재 네가 당하고 있는 고생과 시련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만 특별히 주신 선물이야 그리고 시련이 시험이야 이 시험에 네가 이기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를 승승장구의 길로 이끌어 주실거야” 라며 사명감을 일깨워주었다.
그후 오바마는 마약도 끊고 절망이나 교만이나 방심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해 ‘하버드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이후에 일리노이 상원의원 3선으로 2004년 3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으며 7월 민주당 전당대회의 그가 맡은 기조연설이 황금 시간 때에 TV로 방영되는 등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2007년 2월에는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유세전을 벌인 끝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당선돼 2009년 1월 26일에 제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수사적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지도자가 있으니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국민과 직접 소통에 나선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에는 모욕적인 악풀이 범람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의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지우지 않았다고 한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정치가 다시 빛을 발한 것이다.
그는 백인 청년들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목사 장례식에 참석했다.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다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었다.
영결식장을 가득채운 6,000여명의 참석자들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퍼졌다.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백인들이 득세하고 있는 미국 속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데 대한 의아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의 전날의 비화를 읽고 과연 위대한 분이셨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세상을 나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때로는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꽃보다 아름다운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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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