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멕시코 멕시칼리 단기선교 보고 (1)

2025-08-14 (목) 09: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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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식 장로/ 샌프란시스코 성결교회

▶ 베이연합선교단,올해로 25년째 단기선교

멕시코 멕시칼리 단기선교 보고 (1)

베이연합선교단이 무더운 날씨에 멕시칼리선교센터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고있 다. <사진 JBAUM 제공 >

베이연합선교단 (JBAUM.단장 강승태 장로) 27명은 지난7월28일부터 8월2일까지
멕시코 멕시칼리에서 30여년간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김용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프론티어 선교센터 방문등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이번 연합선교단은 현지에 개척한 9개 교회중 3 개교회서 집회를 했으며 어린이 대상으로 여름 성경 학교도 진행 했다. 그리고 예수공동체 마을, 마약 알콜 재활원, 노숙자 공원에서 전도등을 통해 현지주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씨앗을 심고 돌아왔다.
이번에 참가한 교회는 실로암라스모교회(김용배목사), 샌프란시스코 성결교회(황유선목사), 더나누는교회(임희철목사), 더섬기는교회(김영일목사), 좋은이웃교회(손민호목사), 선교대사명교회(임희철목사), 새빛교회(문인호목사), 새소망교회(이동진목사, 밴대여)등 8개교회이다. 베이연합선교단은 매년 1회 7월말경 4박5일 일정으로 25년째 단기선교를 실시 해 오고 있다.
이번 단기선교 활동 내용을 주대식 장로(샌프란시스코 성결교회)의 글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선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봉사라는 말로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중 고등학교 때 농촌 계몽을 간다고 했을 때도 계몽이라는 말보다는 봉사로 바꿨던 기억이 있다.
목적지 멕시칼리까지 650여 마일을 자동차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까지는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그 쪽 기온이 연일 110도를 넘나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괜찮을까? 80 노구가 그 혹서를 견딜 수 있을까? 떠나기 전, 친구와 선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번에 선교라는 명목으로 멕시코에 다녀 오기로 했다니까 그는 벌써 젊었을 때 다녀 왔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지금 나이 80에 선교를 떠난다구? 무리하는 거 아냐?' 하길래 솔직히 내 스스로도 반신반의 하고 있었지만 순간 반발심이 솟구쳐 올랐다. 못할게 뭐람.
'이 봐, 모세는 나이 80에 홍해를 건넜어. 세상에 너무 늦었다는 것은 없어.' 라고 쏘아부쳤다.
이 후로 나의 마음은 강하게 묶어졌다.
2025년 7월 28일 월요일 아침 6시에 더블린에서 출발하여 5번 프리웨이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중간 기착지에 내렸을 때는 7시 조금 넘었는데 떠날 때 55도였던 기온은 84도, 점심식사를 위해 내린 엘에이 근처 어느 곳은 벌써 107도 까지 치솟아 있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각오는 확고해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닥쳐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광활한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를 내려가는 동안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네요.' '광대무변, 그것이 바로 볼 것이 아닌가?'
내가 받았다. 선교(광대무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볼) 것이 없지만 알려고 들면 모든 것이 알아야할(보아야할') 것들이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에 대한 적응은 일단 기정사실화됐고- - - - -
그 다음은 선교지에서 해야할 일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무엇이든지 첫 경험은 언제나 얼마만큼의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멕시칼리 '프론테라' 선교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2025년 7월 28일 오후 4-5시쯤 됐는데 살벌한 9m 높이의 국경장벽과는 다르게 센터측의 따뜻한 배려와 환영에 내심 조금 놀랐고 한편으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도착 즉시 선교센터 본당에 모여 앞으로의 일정을 위한 예배를 올렸다. 대표 기도를 하라 해서 나는 이 번의 봉사 일정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히 들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고자 할 때 더 낮아지는 자세로 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달라고 기도했다.
남가주에서 온 인원과 합해서 모두 27명이 모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2025년 7월 29일 둘쨋 날 아침은 6시부터 강행군이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아침 식사 후 조승활 김인근 두 분 장로의 봉사로 구운 햄버거 60여개를 가지고 근처 벽돌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교회에 나와 영혼을 위로 받고 믿음 생활을 하라고 권고한 후 음료수와 함께 나누어 주었다. 여기서 잠간 벽돌마을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한 마디로 최저 극빈층이 벽돌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멕시코 멕시칼리 단기선교 보고 (1)

벽돌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벽돌마을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누어주며 복음을 전했다. <사진 JBAUM 제공>


환경은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었고 그들이 거주하는 움막은 50년대 한국의 하꼬방 판자촌보다도 열악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수도도 전기도 없는 지역에서 30여 년 전에 교회를 개척한 김용인 선교사 부부의 결단과 용기에 마음 속으로 크게 감동 받았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뜨겁게 했는가. 무엇을 바라보고 저 고생을 사서 한단 말인가.
얼굴은 햇볕에 그을렀고 손마디는 투박하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늘 다정하다. 사명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전기를 끌어들인게 겨우 2-3년 됐다고 한다. 물은 정부에서 배달해주는 물을 물통에 받아놓고 사용하는데 씻고 마시고 하는데 필요한 소요량은 내 계산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수다.
굳이 말하자면 이 번 선교는 그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고자 여기 왔지만 우리가 과연 그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벽돌을 만들기 위해 진흙을 이기던 맨발은 흙이 엉겨붙은 채로 말랐다가 젖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반듯한 신발이 있을 리 없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기온은 10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변변한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진흙 벽돌을 이기고, 구어내고 하는 그들의 삶에는 어떤 희망도 의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질병과 더위와 빈곤으로 기력이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현장을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들을 돕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방안보다는 더 크게 다가오는 의문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 기독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것이 나 자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번째 의문이었다. 아침 봉사를 마치고 24시간 에어컨이 돌아가는 센터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저녁에는 멕시코 현지인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멕시코 현지인 '실로암' 교회는 김용인 선교사 부부가 이 지역에 개척한 9개 교회 중 하나로 지역 환경보다 훨씬 잘 정돈된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김용인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한 후 현지인에게 물려주고 다시 교회를 개척하고 하기를 9 번이나 했다고 한다. 친교시간에는 지역 주민이 준비한 타코를 나눠 먹으며 만국 공용어인 눈빛으로 서로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다.
16살 내 손녀 또래의 소녀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커다란 눈망울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약간 겁먹은듯한, 그러나 수줍어하는 모습은 그들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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