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씨가 악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도네온은 태생부터 떠날 운명이었다. 19세기 중엽, 오르간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교회를 위해 휴대용 악기로 제작됐지만, 곧 이민자들의 가방 속에 담겨 대서양을 건넜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남미로 향한 이민자들처럼 반도네온은 낯선 땅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새 운명을 개척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반도네온은 탱고와 조우한다. 술집과 선착장, 사창가에서 울려 퍼지던 밑바닥 춤곡 속에 반도네온의 깊고 짙은 음색이 스며든다. 반도네온 소리는 사람의 한숨과 같아서 잊을 수 없는 고향의 기억, 그리움과 절망의 독백이 담겨있다.
반도네온은 구조가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다. 같은 버튼을 눌러도 주름상자를 열 때와 닫을 때 전혀 다른 소리가 난다. 왼손과 오른손의 음 배치도 완전히 달라, 연주자는 매 순간 낯선 감각에 의지해 반응해야 한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은 질서보다 혼란을, 익숙함보다는 낯섦을 드러낸다. 게다가 반도네온은 오케스트라의 전통적 악기 편성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연주자는 이 악기를 부둥켜안고 주름상자를 밀고 당기며 숨을 쉬듯 연주한다. 그 움직임 속에는 들숨과 날숨, 체념과 희망이 함께 깃든다. 반도네온은 몸으로 껴안아야만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다. 연주자의 호흡, 팔의 압력, 손끝의 감각이 모두 맞물려야 비로소 음이 완성된다.
피아졸라가 말한 “슬픔을 춤추게 하는 음악”은 바로 반도네온 음색에서 비롯되었다. 전통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를 과감히 결합한 '누에보 탱고(Nuevo Tango)'의 중심에 언제나 반도네온이 있었던 것이다.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의 숨결 위에 고전음악의 엄격한 대위법과 현대적인 화성을 얹었다. 재즈 특유의 즉흥성과 유연한 리듬 변형을 더해, 전통적인 탱고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음악적 긴장감과 깊이를 끌어냈다.
이 시도는 당시 보수적인 탱고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탱고를 단순한 춤의 배경 음악이 아닌, 오롯이 귀로 감상하는 예술음악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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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