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불, 2025, TPU, LED lighting, electrical wiring, air blower, aluminum, stainless steel, polypropylene rope, acrylic paint, crystals, and fabric, Approx. 850×700×700 cm Lee Bul. Photo: 전병철. Courtesy of the artist. [AMOREPACIFIC 제공]
정신과 의사들은 고민에 빠진다.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 대신 이상적인 부모를 상상하고는 그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환자를 어찌해야 하는지.
마음속 환상 덕분에 겨우 행복을 찾은 사람에게 “그건 가짜야,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여"라고 말하며 환상을 깨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치유인가. 오히려 그나마 유지되던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폭력'은 아닐까.
이런 고민은 병원 밖 세상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현실 사회가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가짜 행복의 세계'를 만든다.
사회는 우리가 규칙을 잘 지키며 살기를 원하지만(현실의 규칙), 개인은 살기 위해 자신만의 꿈이나 환상(상상의 세계)을 만든다.
이 두 세계는 절대로 사이좋게 지내기 힘든데, 그 치열한 싸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현대 미술'의 현장이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진 이불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런 싸움이 잘 느껴진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은 미래에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 몸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불 작가가 만든 ‘사이보그' 로봇들은 팔다리가 없거나 속이 텅 비어 있는 이상한 모습이다.
작가는 “기술이 우리를 완벽하게 해줄 거야"라는 환상이 사실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가짜인지 보여준다. 예쁘고 완벽한 작품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일부러 부서진 몸을 보여주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이것은 예쁜 것만 찾는 미술계에 던지는 하나의 도전장이다. 거기에 더해 거대한 풍선(취약함에 대하여, Willing to be Vulnerable)을 만들고 우리가 많은 단단한 현실이 사실은 금방이라도 터질 수 있는 공기덩어리라고 말한다.

양아치, “레이첼(Rachael)” 전시 전경(아트센터 나비, 2023) [아트센터 나비 제공]
또 다른 작가인 양아치는 우리가 사는 데이터 세상을 관찰한다. 오늘날 도시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 매끈한 시스템 안에서도 여전히 옛날 미신을 믿거나 자기만의 엉뚱한 상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나라는 우리를 시스템에 딱 맞게 고치려(치료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만의 환상을 만들어 시스템 밖으로 도망치려 한다. 양아치 작가에게 예술이란, 이처럼 딱딱한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이 부딪칠 때 생기는 ‘불꽃'과 같다.
영혼은 사라지고 데이터의 연결만이 남는다. 양아치는 신령한 존재와 연결하려는 현대미술을 연출함으로써 이러한 시각을 날카롭게 내비친다.
미술 시장에는 두 종류의 예술이 있다. 하나는 현실의 슬픔을 예쁘게 포장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기분 좋은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이불이나 양아치 작가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환상이 가짜일 수 있다고 경고하는 ‘불편한 예술'이다.
전자는 인기가 많고 비싸게 팔리지만, 후자는 시장 구석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가요, 아니면 행복한 척하는 건가요?” 자신만의 행복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억지로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서운 일이 될 수 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진짜 예술은 우리를 단순히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있는 환상을 걷어내고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진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게 한다. ‘불편한 예술'이 세상의 규칙과 사이좋게 지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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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