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메라 앞 세워놓고 면전서 ‘기습 공격’…트럼프식 쇼맨십

2025-07-26 (토) 1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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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남아공 대통령에 이어 파월 의장에도 ‘망신’ 연출 시도

▶ WSJ “당황시켜 유리한 국면 조성…외교·협상 ‘TV쇼’로 만들어”

카메라 앞 세워놓고 면전서 ‘기습 공격’…트럼프식 쇼맨십

연준 개보수 현장을 둘러보며 파월에게 공사비를 확인하도록 지시한 트럼프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상대를 '기습공격'하며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는 쇼맨십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감정 폭발을 돋우고,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근거가 부족한 자료를 들이밀며 추궁한 데 이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상대로도 카메라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25일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권력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기술을 완성하고 있다"면서 격렬한 논쟁과 소품을 동원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능력은 트럼프 집권 2기의 특징 중 하나라고 논평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가 신속히 생각하거나 반응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본인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거나 상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의를 차리는 데 익숙한 관료들에게 이 기술을 사용해 외교와 협상을 'TV쇼'에 가까운 것으로 변모시켰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J.D. 밴스 부통령의 발언에 참지 못하고 발끈한 후 자신과도 언쟁을 벌인 끝에 쫓겨나듯이 떠나자 기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냐? 이건 정말 대단한 TV(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미끼를 물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는 평가가 언론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백악관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뜬금없이 조명을 끄고 준비된 영상을 보자고 하면서, 해당 영상이 남아공 내 백인 집단학살 의혹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습적인 공개 추궁에 진땀을 뺐는데, 문제의 영상은 남아공이 아닌 민주콩고에서 촬영된 것으로 이후 확인됐다.

전날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연준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과 함께 워싱턴DC 연준 청사 증개축 현장을 둘러봤는데, 공사 비용 견적서 한장을 양복 상의 주머니에서 꺼내 드는 '극적인' 연출을 시작으로, '금리를 내려달라'는 요구를 듣지 않는 파월 의장과의 기 싸움을 벌였다.

증개축 비용이 과다하다는 대통령의 지적을 받은 파월 의장이 당황한 모습으로 안경을 쓴 채 견적서를 살펴보는 모습이 담긴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은 온라인으로 퍼져나갔다.

미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인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도 지난 4월 백악관을 방문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을 대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던 집무실에 갑자기 끌려갔다.

자기도 모르게 들러리를 서게 된 것을 깨닫자 휘트머 주지사는 사진에 찍히지 않도록 들고 있던 파일로 얼굴을 가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휘트머 주지사는 나중에 한 팟캐스트에서 "나는 (대통령과의) 일대일 면담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냉정을 잃고 떠난 후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균열이 생겨 관계 회복에 몇주나 걸렸고, 남아공 대통령에게 보여준 영상과 기사 자료도 조작 시비에 휘말려 백악관의 위신이 손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세계 지도자들은 미리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비공개 오찬에 언론이 초대되는 일을 겪고 난 후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주의보'를 내렸다고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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