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예산군 침수 마을 가보니
▶ “칠십 평생 이런 물은 처음”
▶ 호우피해현장지휘본부 가동
▶ “주말 남부중심 300mm 비”

18일 광주 북구 신안동의 한 보행교 주변이 전날 폭우로 무너져 있다. 광주에 전날 하루에만 기상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426.4mm의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 [연합]
“칠십 평생 살면서 이런 물은 처음이여, 처음.”
하늘에 구멍이 났나 싶을 정도로 쏟아지던 비가 그친 18일 충남 예산군 하포리 2구. 흙탕물이 찰랑대는 도로를 건너 닿은 이곳은 차라리 전쟁터였다. 평화롭던 농촌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곳곳에 담벼락 조각, 냄비, 이불, 옷가지가 진흙과 엉켜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 마을 주민 이경호(72)씨는 “어제 새벽 요란한 재난 대피 방송에 잠이 깨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와, 살긴 살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관계 기사 2면>
토사가 밀려든 축사에서 구조된 듯, 높은 둑길엔 온몸에 밧줄을 감은 소가 드러누워 있었다. 기운이 없는지 기자가 다가가도 눈 하나 껌벅이지 않았다. 귀농한 지 4년째라는 김수관(69)씨도 “수억 원을 들여 구입한 트랙터와 콤바인이 하루아침에 고철이 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자라야 할 들판의 벼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40년 넘게 농사지으면서 이번 같은 비는 처음”이라는 김현국(61)씨는 전날 새벽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어깨를 떨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대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마당은 이미 황토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근처 경로당 옥상으로 대피해 목숨은 구했지만, 10분도 채 안 돼 차량은 물론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했다. 인근 삽교중 체육관으로 피신해 하룻밤을 보낸 김씨는 “너무 빠르게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애지중지 키운 소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축사에서 죽어갔다”며 “그 모습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마을 곳곳에서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된 터라, 주민 스스로 트랙터를 이용해 마을 진입로의 퇴적물을 치우는 수준이었다. 한 마을 주민은 “마을 진입로가 잘려 나가고 일부는 침수돼 차량이 곡예 운전으로 다니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군청에선 사람 하나 안 보내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서 빠져나올 때쯤 예산군에서 호우 피해 현장지휘본부를 본격 가동하고, 주말 동안 총력 복구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기상청은 19일까지 충청권에 50~100mm의 비가 더 오겠다고 예보했다. 남부 지역에는 최대 300mm, 수도권·강원 30~100mm, 전남·경남 100~20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한편 대구·경북에도 17일 최대 200㎜에 달하는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주민 400여 명이 대피했다. 18일 새벽 호우 특보가 해제됐지만 19일까지 50∼150㎜의 비가 더 내리고 많은 곳은 최대 200㎜까지 더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18일 오전 4시 기준 ▲배수 지원 23건 ▲안전조치 64건 ▲인명구조 4건 등 총 16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날 북구 노곡동에서는 도로와 차량이 물에 잠기면서 소방당국이 구명보트를 이용해 주민 25명을 구조하기도 했다. 달성군 구지면에서는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민 348명이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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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권·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