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사회‘불체자추방’직접 영향권… 세탁업계·요식업계 애로사항

2025-06-09 (월) 08:15:19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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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 단속 강화에 출근 안하는 직원…막막”

▶ 세탁업계“또 한파 몰려와”

한인사회‘불체자추방’직접 영향권… 세탁업계·요식업계 애로사항
DC 한인 요식업계 하소연
영업 단축·서비스 질 저하
인력난·고물가 등 삼중고

지난달 워싱턴 DC의 레스토랑에 이민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점심 장사가 한창인 영업시간에 식당 손님들의 불편한 시선은 외면한 채 무장한 단속반은 종업원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체포 대상자를 선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민단속이 강화되면서 범죄 기록이 있는 불체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직장으로 찾아가 체포하고 이른 새벽에 집으로도 찾아가는 등 실적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에 단속반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체포·추방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민국을 강하게 압박했으며 블룸버그 뉴스에 따르면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실장은 이민국 회의에 참석해 하루에 3천명을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동안 6만6,643명의 불체자를 체포했으며 6만5,682명을 추방했다. 이는 하루 평균 665명을 체포한 것이며 앞으로 매일 3천명을 채우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4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체포 대상자는 직장에 출근하지도 않고 잠적하게 된다. 결국 이민 단속반은 아무런 실적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레스토랑 주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출근하지 않는 직원이 늘면서 영업시간도 줄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서비스도 제공하기 어렵다고 불평했다.

버지니아 한식당의 경우 아직 단속반이 급습한 적은 없지만 불안해하는 라티노 직원들이 많다고 했다. 한 명을 체포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까지 조사하게 되고 간혹 실수로 무고한 사람을 체포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신분이라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범죄 기록이 있을 수도 있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서류 때문에 체포될 수 있기 때문에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인 업소들의 경우 이미 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경험했던 만큼 애초에 불체자를 고용하지 않고 있으며 고용 계약서도 비교적 잘 준비해 두고 있다고 했다. 이민 변호사는 “한인 업주들은 단속에 대비해 직원들의 I-9 양식을 잘 챙겨두고 혹시라도 예전 양식으로 기록됐다면 다시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팬데믹 이후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업주 입장에서는 “불안해하는 직원들이 갑자기 그만 두면 어쩌나, 새로운 직원을 뽑기도 어렵고 인건비도 올라 부담스럽다”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불안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이민국은 “직장 이민 단속을 강화할 것이며 불법으로 취업하는 이민자는 추방될 것이고 이들은 고용한 업주도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인사회‘불체자추방’직접 영향권… 세탁업계·요식업계 애로사항

워싱턴한인연합세탁협회 손창범 회장(오른쪽)과 김상태 고문이 본보를 방문해 세탁업계 현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팬데믹 때 30% 문닫았는데…”


인력난·임금 인상 업계 시련
폐업 늘어 경쟁 약화 호재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는 세탁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삶과 닮아있다. 한 때는 한인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기도 했으나 언제부턴가 아무도 찾는 않는 하향산업이 됐다. 설상가상, 팬데믹을 겪으며 30% 정도가 문을 닫았고 이제는 심각한 인력난에 이민단속까지 한숨만 나온다.”

워싱턴한인연합세탁협회 손창범 회장은 힘겹게 버텨온 세탁업계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1986년부터 40년 가까이 세탁소를 운영해 온 손 회장은 “이런 저런 어려움도 많았지만 팬데믹으로 가게 문을 닫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최근 다시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세탁소 운영도 나아지긴 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이민단속으로 인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라티노로 한인 업주들과 각별한 사이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이민자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을 함께했다. 그러나 경제 불황에 팬데믹까지 겪게 되면서 영업시간을 줄이고 직원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게 문을 닫지 않고 버틴 업소들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이후 심각한 인력난을 비롯해 전반적인 임금 인상도 큰 부담이라고 했다. 세탁업의 경우 숙달된 직원이 절실한 만큼 초보자를 고용할 수도 없고, 경력 직원은 그 만큼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라티노 직원들도 세대가 바뀌면서 영어를 잘하는 2세대들은 다른 일자리로 옮겨가고,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며 “사장이 직원 눈치를 봐야하고, 직원 대우를 소홀히 하면 이제 세탁소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한탄했다.

또한 최근의 이민단속 강화는 라티노 직원들이 세탁소를 떠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직 워싱턴 지역에서 이민단속반이 세탁소를 급습했다는 소식은 없지만 일부 업소에는 단속 경고장이 발송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불체자를 고용한 업주에게 막대한 벌금이 부과됐다는 이야기도 들려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세탁소도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이민단속을 경험했던 만큼 직원 채용 시 신분을 확인하고 비교적 서류도 잘 준비해 두고 있다. 그러나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 혹시 모를 불이익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 회장은 “총연 회의에 가보면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회원들이 많아 법률 세미나도 제공한다”며 “업주 입장에서 신분증 확인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채용 서류를 작성하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근무 기록을 남겨두어야 뒤탈이 없다”고 조언했다.

과거 워싱턴 지역에만 2천개가 넘는 한인 세탁소가 있었으며 이들은 다른 이민자들의 부러움을 사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이제 한인 1세들의 성공 스토리로 막을 내리며 2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타 인종에게 넘어가고 있다. 현재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인뿐만 아니라 라티노 직원들도 대부분 고령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손 회장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최근 세탁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세탁소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과열 경쟁도 사라지고, 물가 상승에 맞춰 세탁비도 인상됐다. 그리고 워싱턴 지역의 경우 다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아져 손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력난에 이민단속까지, 사람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세탁소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AI 발전에 힘입어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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