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플레이버타운 이태규·김정숙
사람들이 흔히 갖는 오해가 있다. 셰프들은 뭔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거라든지, 남다른 촉으로 식당을 고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본인이 만든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밥상을 차린 어머니가 식사를 거르시거나 대충 챙겨먹는 이유와 비슷하다. 요리하고 나면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요리사들이 좋아하는 음식 부동의 1순위는 '남이 만든 음식'이며, 기왕이면 국적불문 '강렬한 맛'이 있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는 곳을 일부러 찾는다.
■ 프렌치 출신 홍콩 중식 '플레이버타운'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플레이버타운'은 요리사들이 사랑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곳이다. 호주에서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한 이태규(44) 셰프와 페이스트리를 전공한 김정숙(39) 셰프 부부가 퇴근 후 즐겨먹던 중식에 빠져 탄생시킨 공간이다. 중식을 기반으로 하되 프렌치 테크닉과 다양한 아시안 요리 경험을 접목한 독특한 정체성으로 ‘셰프들의 맛집'으로 손꼽힌다. 중화 본토의 맛보다는 아시아의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세련된 홍콩 스타일의 중식은 요리사들에게 영감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접시를 비우고 나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된다. 어떤 경험을 쌓아야 이런 요리들이 만들어지는 걸까?
두 셰프의 여정은 호주에서 시작됐다. 시드니 르코르동블루 요리학교 출신인 두 사람은 졸업 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서로를 알게 됐다. 요리 여정을 본격적으로 함께한 것은 2011년 한인 요리사들과 만든 ‘서울 오브 시드니'라는 팝업 그룹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당시 한식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라 가볍게 시작했는데, 현지 미디어에서 큰 관심을 보이며 유명세를 얻었다. 이 셰프는 이 경험을 발판으로 2014년 시드니에 자신의 첫 한식 레스토랑인 ‘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작은 공간에 가구도 직접 만들고 간판도 과일 상자를 잘라 만드는 등 쉽지 않은 창업이었지만, 현지에서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식 다이닝을 3년 정도 운영하다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눈을 돌린 곳은 중식이었다. 왜 중식이었느냐는 질문에 이 셰프는 “일 끝나고 차이나타운에서 먹는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웃음)"고 말했다. 두 사람은 홍콩으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약 3년간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호주 차이나타운에서 먹던 중식과는 디테일부터 차원이 달랐어요. 홍콩에서 중식을 제대로 배우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클래식을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현지 재료를 이용해 다른 요리를 하더라도 결국 오리지널리티, 핵심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고, 이는 지금 플레이버타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홍콩에 이어 핀란드 헬싱키에서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운영한 이후, 두 사람은 2020년 초 한국에 돌아와 성수동에 플레이버타운을 오픈했다. 김 셰프는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자연이 있는 곳을 찾게 돼었는데, 서울숲이 있는 이곳을 보고 ‘아, 여기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플레이버타운은 금세 성수동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기간 해외 여행이 어려웠던 데다 국내에선 쉽게 접할 수 없던 이국적이고 독특한 맛에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 "시그니처 메뉴는 손님이 정한다"플레이버타운의 메뉴판은 두 종류다. 하나는 ‘시그니처 메뉴(대표 요리)'고 하나는 ‘시즈널 메뉴(계절 요리)'다. 시그니처 메뉴는 보통 요리사들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요리라고 여기지만 이 셰프의 생각은 다르다. “시그니처 메뉴는 저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정하는 거라고 봐요. 손님들이 계속 그 메뉴를 찾아주시니까 시그니처가 되는 거죠. 사실 창의적이고 혁신을 추구하는 셰프에게는 시그니처 메뉴는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에요. 계속 같은 걸 만들다 보면 다른 메뉴를 연구할 동기가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더해진 게 단골 고객을 위한 시즈널 메뉴다. 두 개의 메뉴 라인을 운영하는 건 주방에 부담이 크지만 이 셰프는 이를 오히려 플레이버타운의 핵심 역량으로 바꿔냈다.
“이런 방식은 결국 손님들도 좋고 직원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는 방향이라고 봐요. 직원도 이런 변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뽑으려고 노력해요. 면접할 때 우리는 메뉴 변동성이 굉장히 많은 레스토랑임을 강조해요."
고객이 원하면 메뉴판에 없던 메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단골이 된 손님들은 적극적으로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는데, 두 셰프는 거절하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낸다. “어떤 단골들은 귀한 식재료를 직접 공수해주며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요. 도전적이지만 그만큼 저희도 보람되고 고객분들도 너무 만족해하죠. (이태규 셰프)" 플레이버타운은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을 넘어 손님들과의 부단한 화학 작용을 통해 함께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셰프가 주방을 지휘하는 동안 김 셰프는 매장 운영과 디저트 영역을 맡는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불편할 법도 하지만, 둘은 동료 셰프인 데다 각자 맡은 일이 분명해 부딪칠 일이 적은 편이다.
“부부가 같이 일하는 셰프들 모임에서 보니 대부분 한 명이 레스토랑을 하다가 다른 한 명이 자의 반 타의 반 돕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저희는 각각 독립된 영역이 있고, 처음부터 이건 제 일이었으니까요.(김정숙 셰프)" 이 셰프도 “그래도 적어도 내 편은 한 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많이 돼요. 싸워도 결국엔 같은 편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 셰프는 ‘화려한 꽃보다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자'는 생각으로 사업 다각화보다는 플레이버타운을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직원들의 미래다. 김 셰프는 “셰프라는 직업이 미래에 대한 보장성이 낮아요. 20년, 30년을 열정적으로 일해도 이후의 삶이 보장받지 못하는 직업군"이라며 “우리에게 로열티를 준 만큼 우리도 이 친구들의 나중을 도울 수 있는 곳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