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가마 속에서 엄마를 만나다

2025-05-08 (목) 02:59:41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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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쯤 ‘이마고관계치료 컨퍼런스’의 통역자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거주한 오피스텔 빌딩에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바쁜 일정 중 짬을 내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경험은 몸과 정신에 청량제가 되어주었다. 목욕의 참맛을 알고 난 후 미국에 돌아와서도 몸이 찌뿌둥하거나 피곤할 때면 인근 찜질방을 찾아 자기돌봄을 챙기게 되었다.

지난달 한국 방문 중에도 매주 찜질방이나 온천을 찾아 쉼을 누렸다. 오래전 한국에서 처음 찜질방을 갔을 때 느꼈던 어색함과 문화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운동장같은 넓은 곳에 삼삼오오 널부러져 자거나 쉬는 모습이 신기하고 생경했다. 이제는 워싱턴 지역에도 찜질방이 많이 생겼고,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은걸 볼때, 한류 열풍이 K-pop, 화장품, 영화, 드라마 및 문학을 너머 목욕문화까지 퍼짐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집에 목욕탕이 변변치 않던 70-80년대에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목욕과 관련된 여러 기억들이 있으리라. 냉탕에서 놀던 나와 여동생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중학생이 되고 몸에 2차 성징이 나타난 후 변하는 신체가 낯설고 창피해서 대중탕 가는 걸 멈추었고 23살에 도미했다. 그러니 한국 방문 때 공중 목욕탕을 찾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러던 중에 찜질방이 생겼고 호기심에 30여년 만에 다시 찾은 대중탕은 여전히 어색했다.


한달 전 한국 방문 중에 제부도 근처 사는 친구네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친구는 출근했고 나는 읍네의 작은 목욕탕을 혼자 찾았다. 소박한 시골 목욕탕에는 찜질방 대신 황토로 만든 불가마만 있었다. 에스키모 이글루를 닮은 불가마는 70-80도가 넘어서 짚가마니를 뒤집어 쓰고 들어가야했다.

가마니가 깔린 바닥에 눈을 감고 앉아 들숨 날숨을 천천히 호흡하니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적외선이 방출되는 뜨거운 공기 속에서 나를 감싼 거적이 주는 안도감이 마치 엄마 자궁 속의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그때 문득 40년전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목욕탕에서 친구 만나는걸 좋아하셨다. 누구든 늦어도 목욕을 하고 있으면 되니까 기다릴 필요 없어서 좋다고 하셨다. 특히 거적을 쓰고 들어가는 불한증막을 갔다온 날은 ‘참 시원해서 좋았다’며 거기서 구운 계란을 갖고 오셨다. 어린 나는 ‘왜 그렇게 뜨거운 곳에 거적까지 쓰고 들어가는지, 어떻게 시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엄마가 가져온 구운계란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40여년 후 불가마 속에 거적을 쓰고 앉아있던 내가, 그 옛날 불가마를 좋아하던 엄마를 만난 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조우였다. 내가 50살이 넘어 뒤늦게 목욕과 찜질의 맛을 즐기게 된 것이 내 몸 속에 아직 발현되지 않았던 엄마의 잔재와의 연결이란 말인가?

나는 엄마랑 그렇게 가깝거나 친하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공부를 잘하는게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다. 다행히 나는 어린시절 엄마의 자랑이 될 만큼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아는 문제를 틀렸거나 시험을 못보면 손바닥을 맞거나 크게 혼났기에, 엄마를 떠올리면 무서웠고 ‘수’를 못받을까봐 걱정과 불안이 높은 아이였다. 그러다보니 중고등학교 때는 독서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삶을 나누며 친해질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고3 졸업과 함께 엄마는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우리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그랬던 내가 가마니를 뒤집어 쓴 그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엄마를 만난 것이다. 목욕에 끌리게 된 것이 그냥 우연이 아니라 내 세포 안에 엄마가 심어놓은 엄마의 흔적이 나의 깊은 곳과 연결되는 특별할 경험이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한참을 울었다. 참 오랫만에 엄마가 그리웠다. 지금 살아계시면 좋은 한증막을 찾아 전국을 함께 여행할텐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욕이나 찜질을 할 때마다 이제는 더 이상 무섭거나 낯설지 않은 엄마를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다. 엄마의 육체는 40년 전에 떠났지만 나의 몸안에 엄마랑 함께 즐기는 부분이 엄마를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슬픔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상실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사랑하던 사람이 즐겨하던 그 일을 내 삶에 계속 해나가는 것은 애도 과정의 치유과정’이라고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겨진 화초를 키우는 일, 또는 함께 산책하던 길을 계속 걸으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 등 떠난 이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특별한 방식으로 내 삶에 살아있게 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떠난 사람과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인 것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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