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난한 교회 내걸고 ‘71년간 韓사목’

2025-04-16 (수) 05: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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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봉 주교 선종, 농민 권리 옹호 앞장

가난한 교회 내걸고 ‘71년간 韓사목’

두봉 주교가 2023년 6월 6일 경북 의성군에 있는 한 공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던 중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

6•25 전쟁 직후 한국에 파견돼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70년 넘게 사목 활동을 한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레 뒤퐁) 주교가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천주교 소식통에 따르면 두봉 주교는 이달 6일 뇌경색으로 안동병원에서 긴급 시술을 받은 후 치료 중이었으나 끝내 기다리던 신자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날 오후 7시 47분께 생을 마감했다. 두봉 주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으며 마지막 성사(聖事)를 하고서 안동교구장인 권혁주 주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했다고 안동교구 관계자는 전했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21세에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이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53년 6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54년 12월 한국에 파견돼 대전 대흥동천주교회에서 10년간 보좌로 사목했으며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등을 지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고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취임해 약 21년간 교구를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했다. 두봉 주교는 '가난한 교회'를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그가 안동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3년 경북 영주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의원이 개원했고 1978년 12월에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가 창립했다. 두봉 주교는 농민의 권익 보호도 중시했는데 1978년 발생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천주교 신자이며 농민회 영양군 청기 분회장이던 오원춘 씨가 '영양군이 감자 경작을 권장했지만, 종자가 불량해 싹이 나지 않는다'며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항의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당국이 농민들의 요구를 묵살하자 안동교구 사제단이 나서 피해를 보상받게 됐는데 이후 오씨가 괴한들에게 납치•폭행당한 것이다. 사제들이 진상조사를 추진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가톨릭이 대립하는 시국 사건으로 번졌고 외무부가 두봉 주교에게 자진 출국 명령까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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