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사태’ 권씨, 재판 前 협의 출석…수척해진 얼굴로 묵묵히 경청
▶ 본재판 내년 2월 시작… ‘가상화폐 수사 축소’ 美법무차관 메모 쟁점 가능성

몬테네그로서 재판받을 당시 권도형[로이터]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에 대한 미국 내 형사재판 일정이 내년 2월로 3주가량 연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범죄수사 대상이 되는 가상화폐 관련 범죄 범위를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권씨 사건 재판은 이 같은 행정부 방침과 무관하게 그대로 유지될 예정이라고 검찰 측은 밝혔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10일 열린 권씨 사건의 두 번째 재판 전 협의에서 본재판 개시 일정을 2026년 2월 17일로 연기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당초 2026년 1월 26일 시작될 예정이었던 권씨 사건 본재판은 약 3주 늦춰져 시작될 전망이다.
권씨는 지난해 12월 31일 몬테네그로에서 미국으로 인도돼 현재 뉴욕 브루클린의 연방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권씨의 미국 법정 출석은 이날이 세 번째다.
그는 1월 초 판사가 유죄 여부를 묻는 기소인부 심리에 출석해 자신이 받는 범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이날 열린 재판 전 협의는 검찰과 피고인 측이 참석해 판사 주도 하에 재판에서 다툴 쟁점을 정리하고 향후 재판 일정을 정하는 소송 절차다.
권씨는 이날 미결수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수의를 입고 양손엔 수갑, 몸에는 쇠사슬 포승줄이 묶인 채 호송인 2명과 함께 법정에 출두했다.
지난해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을 당시 언론에 공개된 모습과 비교하면 다소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권씨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묵묵히 협의 과정을 들었고, 직접 발언하지는 않았다.
미 검찰은 이날 협의에서 권씨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대다수 증거를 변호인 측에 공유했다고 밝혔고, 변호인 측은 수 테라바이트 용량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거래데이터 등이 총망라된 방대한 이 사건 증거자료 규모는 본재판 개시 시점이 내년으로 미뤄진 결정적인 배경이 된 바 있다.
미 검찰은 권씨 신병을 인도받는 과정에서 몬테네그로 수사당국으로부터 4개의 휴대전화를 확보했지만, 기기에 암호가 걸려 있어 4개의 기기 중 2개 기기의 일부 데이터만 추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휴대전화 암호 해독과 관련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살펴보고 있지만 현재로선 추가할 정보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가상화폐 관련 범죄 수사 및 기소 대상 범위를 제한하기로 한 미 법무부의 방침이 권씨 기소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엥겔마이어 판사 질의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블룸버그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토드 블랜치 미 법무부 차관은 지난 7일 메모에서 수사 및 기소 대상 가상화폐 범죄 유형을 테러리즘과 마약 카르텔, 투자자 피해, 기타 제한된 범주 사건으로 제한해 다루겠다고 말했다.
앞서 가상화폐 업계 안팎에선 친가상화폐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권씨 사건 재판도 영향을 받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인 바 있다.
권씨 측 변호인도 블랜치 차관의 메모 내용이 재판 전 피고인이 제기할 수 있는 요청서(motion)의 잠재적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언급, 향후 절차에서 쟁점으로 삼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변호인 측은 앞서 검찰이 적용한 증권사기, 상품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등 3건이 똑같은 사안이라며 이들 혐의를 동시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023년 3월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직후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검은 권씨를 증권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어 미 검찰은 몬테네그로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은 이후 자금세탁 공모 혐의 1건을 추가해 그가 받는 범죄 혐의는 총 9건이 됐다.
권씨는 자신이 설립한 테라폼랩스 발행 가상화폐 테라의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속이고 TV 인터뷰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21년 5월 테라 가치가 기준치인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가 자동으로 회복됐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테라폼랩스와 계약한 투자회사가 테라를 몰래 사들이도록 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부양한 시세조종 혐의도 받는다.
권씨가 받는 9개 범죄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130년형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2023년 3월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권씨를 체포한 몬테네그로 당국은 지난해 12월 31일 권씨의 신병을 미국으로 인도한 바 있다.
한국 정부도 권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권씨도 한국행을 희망했으나 몬테네그로 당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