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 “농업 수출 관련 제재 해제해야” 조건 제시…美 “돕겠다” 화답
▶ ‘에너지 시설 공격중단’ 이은 합의… ‘부분 휴전’ 발효시점 여전히 불투명
3년여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0일간 부분 휴전'을 위한 미국의 중재 속에 흑해에서의 무력 사용 중단에 원칙적으로 뜻을 같이 했다.
부분 휴전 발효 시점과 방식 등이 불분명한 제한적 합의로 평가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농업 분야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미국도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에 부응하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기조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서 유럽의 반발도 예상된다.
백악관은 지난 23∼25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위한 미국과 러시아의 실무 협상 결과를 소개한 보도자료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군사 목적으로 상업 선박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성명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흑해 협정 이행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의 성명에는 상선의 군사 목적 사용 금지를 감시하기 위한 적절한 통제 조치를 수립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역시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모든 당사국은 흑해에서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상선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며 미러간 합의를 자신들도 수용했음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은 미러 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을 30일간 중단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크렘린궁과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크렘린궁은 추가로 발표한 성명에서 공격을 유예하는 시설에는 정유공장과 석유 저장 시설, 석유·가스관 시설, 발전소와 변전소 등 전력 생산·송전 시설, 원자력 발전소와 수력발전소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또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기간이 지난 18일부터 30일간으로 합의됐으며 합의에 따라 기간이 연장될 수 있지만, 한쪽이 공격 중단을 위반하면 다른 한쪽은 합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백악관과 크렘린궁은 에너지 및 해양 분야에서의 이 같은 합의 이행을 도울 제3국의 중재를 미러 모두 환영한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동일한 입장을 피력했다.
미국 측 협상단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을 잇달아 만나며 '흑해와 에너지 분야 휴전' 합의를 중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은 직접 만나지 않았으며 미국 측이 양국 대표단과 따로 회담하며 '3각 합의'를 유도했다.
2022년 2월부터 3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을 중단시키려는 노력이 한 걸음 진전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8일 전화 통화에서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과 흑해 항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러시아는 협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로셀호스)과 러시아 선적 선박, 러시아 식품 생산·수출업자 등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고 식품·비료 관련 금융기관이 국제 결제 시스템에 다시 연결돼야만 합의 결과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백악관도 "미국은 농업(농산물) 및 비료 수출을 위한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크렘린궁도 같은 내용을 성명에서 언급했다.
러시아가 합의 이행의 조건으로 제재의 일부 해제를 내걸고 미국이 이를 돕겠다며 화답한 셈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시키면 대러시아 경제제재 해제를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며 러시아 압박 강화라는 서방의 정책을 명백히 번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합의가 전면적 전투 중단이라는 미국의 구상에는 미치지 못한 가운데 흑해 휴전이 언제 어떻게 이행되는 것인지, 각자가 얼마나 이행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날 페르비카날(채널1) 인터뷰에서 흑해곡물협정을 재개하려면 미국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명령해 보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 속에서도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의 안전한 수출을 보장하기 위해 2022년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체결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협정 내용 중 러시아산 식량과 비료 수출을 보장하는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2023년 7월 협정을 파기한 바 있다. 특히 러시아는 러시아 농업은행에 대한 제재가 농업 수출을 방해했다고 주장해왔다.
라브로프 장관은 미국의 중재에 대해 "리야드 회담 전날 미국과 접촉하면서 미국 측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서로 옆 방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서 셔틀 외교를 하고 동일한 성명을 발표하기를 원한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중재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협상은 불안한 분위기 속에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에너지 시설에 대한 휴전이 합의된 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지 않은 채 네탓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