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땡큐’ 받은 대법원장, ‘과속 제어장치’ 역할 할까

2025-03-22 (토) 04: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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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판사탄핵’ 주장에 로버츠 반대성명 내자 美언론 주목

▶ NYT “大法, 법제도 수호에 대담해야”…WSJ “트럼프의 ‘법원공격’, 역효과”

트럼프의 ‘땡큐’ 받은 대법원장, ‘과속 제어장치’ 역할 할까

취임식때 로버츠 대법원장과 악수하는 트럼프 [로이터]

미국 행정과 입법 권력을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질주'가 계속되면서 연방 대법원, 그중에서도 존 로버츠(70) 대법원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보수 성향인 로버츠 대법원장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판사 탄핵' 압박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일을 계기로 로버츠 대법원장과 대법원의 향후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전시(戰時)에 적용되는 '적성국 국민법'을 동원한 불법 이민자 추방을 일시 중지하라고 명령한 연방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자 18일 "지난 200년 이상 (법관) 탄핵은 사법부 결정을 둘러싼 이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돼 왔다"며 "그 목적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항소 절차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로버츠의 이 같은 성명이 눈길을 끈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추방, 정부 조직 축소와 공무원 대규모 해고 등 핵심 국정 과제를 '전광석화'처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법부 말고는 마땅한 견제 세력이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료와 백악관 주요 포스트를 사실상 '전원 충성파'로 채운 가운데,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하원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대법원 역시 로버츠를 포함해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으로 진보 성향(3명)을 압도하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에 이견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럼에도 삼권분립의 정신을 담은 미국 헌법 하에서, 행정명령을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질주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사법부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성명이 눈길을 끈 또 다른 배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가도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준 대법원의 작년 7월 결정이다.

대법원은 작년 7월,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official) 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고,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 관련 형사 재판 절차를 사실상 중단시킴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제거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 5명과 함께 다수 의견을 형성하며 이 결정을 주도했다.


당시 소수 의견을 낸 3명 중 한 명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전직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면책하는 것은 대통령직이라는 제도를 개조하는 일"이라며 "정적을 죽이라고 '네이비 실(Navy Seal·미 해군 특수부대) 팀6'에 명령하는 것도 면책,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군사 쿠데타를 조직하는 것도 면책, 사면 대가로 돈을 받아도 면책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논란이 상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연방 의회에서 연설할 때 현장에 자리한 로버츠 대법원장과 악수하며 "다시 한번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자 작년 7월의 대법원 결정에 사의를 표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2005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 1기때 임명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3명의 강경 보수 성향 대법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작년 7월 대법원 결정이 적지 않은 대중들에게 '로버츠=트럼프 우군'이라는 인상을 심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로버츠 대법원장의 성명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사법부 수장의 '경고'라는 해석에서부터, 판사를 압박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국정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조언' 내지 '충정'의 메시지였다는 해석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에 대한 압력 행사를 자제해야 하고,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권 남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어 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진보 성향 매체 중에서는 워싱턴포스트(WP)가 21일자 사설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이 현명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사 탄핵 위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NYT)는 22일자 사설에서 "로버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그들이 감독하는 법률 시스템을 보호하는 데 더 대담해져야 할지 모른다"고 썼다.

또 보수 성향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법원 결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법원은 그의 요구에 더 저항하게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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