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나도 반딧불이다”
2025-02-27 (목) 12:00:00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
불황기에는 사람들이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주는 책을 찾는다. 외환위기 때 긍정의 힘을 강조한 ‘시크릿’(론다 번)이,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는 힘든 젊은이들을 토닥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이 그랬다. 누군가는 가벼움을 준엄하게 꾸짖지만 그게 대중 마음이다. 요즘은 음악이 그렇다. 14년 무명가수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작년 10월 리메이크한 이 곡의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3,000만 회에 육박하고, 국내 음원차트는 물론 빌보드 차트에까지 진입했다. 예능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데 이어 공중파TV 뉴스에도 출연할 만큼 화제성이 대단하다. 호소력 깊은 허스키한 목소리, 위로가 필요한 국민들에게 힘을 주는 가사의 울림,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전해진 노래와 맞닿아 있는 황씨 삶의 궤적까지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노래가 하고 싶어 막노동으로 모은 200만 원을 들고 상경한 그는 현실 장벽 앞에서 놀이터 벤치, 건물 옥상 굴뚝 등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했다고 한다. 긴 무명생활 끝에 30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밴드 피노키오의 보컬이 됐지만 코로나19로 대중 앞에 설 수 없었다. 그의 얘기를 읊조리듯 화자인 개똥벌레(반딧불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음원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황씨의 삶과 노래에 격하게 공감하며 “나도 반딧불이”라고 고백한다. 마치 ‘미투’라도 하듯이. ‘건설현장 점심시간 종이박스를 깔고 잠깐 누웠는데 노래를 듣고 펑펑 울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별똥별 같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너무 슬퍼요’ ‘나이 49세입니다. 전 벌레가 맞아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아직 별인가 봅니다. 집에 가면 제일 반겨줍니다’ 이토록 상처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도 댓글을 통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위안받는 모습은 참 따뜻하다. 나라와 정치가 보듬지 않으니 음악이 한다.
<이영태 /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