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그럴 수도 있지!

2025-02-25 (화) 12:00:00 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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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럴 수 있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할까?”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 “왜 그렇게 했을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을 때 나오는 말들이다.

우리들은 늘 실수 속에 산다.

말과 행동으로 저질러지는 크고 작은 실수들. 할수만 있다면 실수나 실패가 없는 삶을 살면 좋겠지만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자주 엎어지고 넘어지며 간다. 오히려 실수는 우리 옆에서 항상 함께 하려고 하는 찰떡 친구 처럼 늘 붙어 다닌다. 따라 다닌다. 숨어있는 듯 하다간 슬며시 나타나 저지래를 치고 난감하게 한다. 달갑지도 않은데 평생을 함께 해야만 하는 지겨운 사이 처럼 말이다. 우리는 실수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실수로 가까운 사이가 소원해 지기도 하고 실수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 특히 말 실수는 으뜸이다. 말을 잘 못 하고, 잘 못 듣고, 잘 못 이해하고, 잘 못 전하는 경우,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꼭 우리의 얘깃거리를 기다리기나 하듯 말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는 어이 없는 일들이 우리 삶 속에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실수 때문에 서로 미안해 하고 짜증도 내고 다투기도 한다. 그런 내가 싫어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실수로 주저앉아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또는 상대에게 이 말 한 마디 해주면 어떨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괜찮아. 다 그런거야!” “모두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렇다. 우리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좌절하고 스스로가 용납이 안되고 용서가 안돼서 괴로워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일단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 했어? 도대체 이해가 안되네.”라고 억지로라도 따지고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상식 선에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포용하고 배려하려는 마음 가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마음이다.

그 입장에 내가 있다면 나도 그랬겠지? 누구나 다 그럴꺼야. 그러고 나면 이해 안되는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내게 그럴 수도 있지를 자주 하다 보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매사가 그럴 수도 있다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게 습관 처럼 돼 버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해와 아량을 넘어 자신을 속이고 뻔뻔해 질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가능하면 나에겐 좀 야박하게, 남에겐 넉넉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쓴 이기주씨는 말에도 온도가 있다고 한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준다고. 어디 슬픔 뿐이겠는가? 따뜻한 말은 아픔도 근심도 피곤함도 다 감싸 안아 준다.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위로와 힘이 돼 준다. 실수로 주저앉은 당신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위로를 준다면 그 말의 온도는 얼마나 될까?

늘상 반복되는 삶이지만 처음 가보는 길 처럼 때로는 어렵다. 여전히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다. 하지만 어깨를 도닥이고 손을 잡아주며 말을 해 보자. 마음이 넉넉해지고 푸근해 지는 말.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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