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용현의 산골 일기] 피리도 못 불면서

2025-02-17 (월) 12:00:00 김용현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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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입춘(立春)이 이어 18일 우수(雨水)가 지나면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이다. 우수가 지나고 나면 시골에서는 농사일을 시작하는데 병충해를 방지한다며 밭두렁에 불을 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온도와 습도가 최적이라 서둘러 발효음식인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그는 일도 바빠지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봄이 올동말동한 것인가. 오르내리는 산 길 양옆으로 소나무, 대나무, 동백나무 같은 상록수 외에 대부분의 나무들은 거무칙칙한 겨울 패딩을 갈아입지 못하고 있고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는 우리 텃밭은 아직도 적막강산이다. 그래도 어디선가 봄은 오고 있을 것인데 ---

신석정 선생의 ‘대춘부(待春賦)’가 설렘을 준다. ‘우수도 경칩도/ 머 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봄은 기다림이다. 뜻하지 않게 기쁜 소식이 올 것만 같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사람을 만날 것만 같은 봄.


봄이 오면, 시골에서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기억이 난다.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연한 가지를 잘라서 나무통은 빼내고 입에 닿는 부분만큼 껍질을 얇게 벗겨낸 다음 납작하게 만들어 불면 피리 소리가 났었다. 피리 소리라고 해봐야 고작 ‘삑삑’ 하는 단음이지만 그래도 신명이 났었다.

그러다가 서울로 먼저 간 형이 하모니카를 보내줘 얼마나 기뻤던지. 버들피리 대신 하모니카로 바꾸어 ‘해는 져서 어두운 데 --’를 울며 불며 다녔다. 복직해서 혼자 서울 가 있던 동안은 단소를 배웠으나 잊고 지냈는데 LA 떠나올 때 선배가 귀한 단소를 선물로 주셔서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돌아보면 무엇 하나 매듭 지은 것 없이 이것저것 벌이기만 하며 살아왔다. 음악의 둔재가 창과 장구 까지 배운다고 나선 것도 그랬지만 같이 공부한 세 사람이 소리 패를 만들어 공연한다고 다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남우충수(濫?充數)’ 라는 말이 있다. 어느 해인가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그해의 사자성어였는데 ‘지나칠 남, 피리 우, 채울 충, 셈 수’ 로, 재능 없는 사람이 있는 체 하는 걸 말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선왕은 특별히 피리 합주를 좋아했는데 남 곽이라는 사람이 피리를 전혀 못 부르면서도 합주단에 끼어 지내다가 독주를 좋아한 후대 민왕에 이르러 그만 들통이 나 쫓겨났다는 고사다.

재능이 없는 건 혼자 부끄러워하면 그만이나 남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는 정치는 그래서는 안 된다. 정치를 몰랐으면 정직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민주국가에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 놓고는 성찰은커녕 갖은 거짓말과 선동으로 나라를 내전으로 내모는 장면이 벌써 두 달째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내 재산 내가 다 쓰고 간다’ 는 것이 요즘 서울 노인들의 야박한 생활신조라고 하지만 대통령마저 그동안 쌓아놓은 대한민국의 곳간, 품격 다 거덜 내고 가겠다는 것으로 보여 화가 치 민다. 헌정질서 파괴범에 대한 온정주의가 역사를 퇴행시켜 왔다. 아 ! 내 조국에 봄이 올 때까지--, 봄은 온 것이 아니다.

<김용현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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