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려운 발렌타인 데이

2025-02-13 (목) 04:36:11 빌리 우 스털링,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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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발렌타인 데이, 2월14일이 되면 해마다 아내에게 꽃 선물을 했다.

나이가 많아져 죽어서 헤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황혼이혼 소리가 들려와도 또 이태 겨울 눈이 1m 가까이 내려 마당에 눈을 치우는데 한 삽도 도와 주진 않고 빨리 안 치운다고 잔소리만 해서 급기야 “못 살겠다 갈아 보자"고 노래를 해도 곱게 살아 주는 아내가 고마워 해가 갈수록 점점 고급 꽃, 비싼 꽃을 사서 아직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 앞에 두고 내려와 아침 신문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 꽃을 안고 입이 귀에 걸려 내려 왔다.

어느 해는 발렌타인 데이에 아내에게 기분을 맞춰 주지 못해 꽃병에 꽂혀 있는 꽃다발을 뽑아 나의 귀싸대기를 내리 쳐 벌떡 일어나 기분을 맞춰 주기도 했는 꽃 선물을 보행기에 의지하는 처지가 돼 꽃 사러 못 가는 이번에는 발렌타인 데이가 두려운 날로 다가 온다.

겨울을 하얗게 장식하고 아직도 그늘에 남은 잔설 위에 나무들은 움이 돋고 새들은 짝을 찾아 지저귀고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하고자 다가 오는 발렌타인 데이는 나에게 두려운 날로 다가온다. 그래서 꽃으로 따귀를 맞는 꽃싸대기는 이번에는 없을 거야.

<빌리 우 스털링,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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