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학적 진실과 통계의 마술

2025-02-11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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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계란 노른자는 체내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된 적이 있었다. 보통 계란 하나에는 186mg의 콜레스테롤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미국 다이어트 가이드라인이 정한 하루 콜레스테롤 권장량 300mg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혈관을 막히게 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최근 나온 연구 결과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작년에 나온 미 심장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1주일에 강화 달걀 12개를 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4개월 후 비교 조사해 본 결과 콜레스테롤 수준을 포함, 건강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몸 속에는 음식물을 통해 들어오는 콜레스테롤과 간에서 만드는 콜레스테롤 두가지가 있는데 자체 생산 콜레스테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는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콜레스테롤은 거의 섭취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뭐를 먹느냐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와 큰 상관이 없다. 반면 달걀에는 눈에 좋은 루테인과 뇌와 신경을 돕는 콜린, 각종 비타민 등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다. 계란을 먹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가뜩이나 어지로운 세상에 울분을 술로 달려려던 사람에게 연초 나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비벡 머피 연방 보건국장이 술은 한 방울도 몸에 나쁘다며 모든 술에 암 위험 경고문을 넣어야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하루 한 잔 혹은 그 이하의 술도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며 “음주는 매년 10만 건의 암 발생과 2만건의 사망을 초래하는 주요 암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얼핏 보면 술로 많은 사람이 죽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중 적당량 (남자는 하루 두 잔, 여자는 한 잔)을 마셨는데도 죽은 사람은 17%다. 2만명의 17%는 3천400명이고 2023년 미국에서 암으로 죽은 사람은 60만명 정도니까 암 사망자 가운데 적당량을 마셨는데도 죽은 사람은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적당량을 마시고 암으로 죽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와 거의 동시에 나온 연방 보건국 보고서 10배 분량의 ‘국립 과학 엔지니어 의료 아카데미’ 보고서는 적당량의 음주는 대다수 암과 무관하며 오직 유방암 발생률만 약간 올라가는 것으로 돼 있다. 거기다 소량의 음주는 심장병 발병율을 낮추고 금주보다 오히려 평균 수명을 늘린다는 종전 연구 결과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이 연구에 대한 비판도 있다. 술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이 약간 마시는 사람보다 일찍 죽는 것은 원래 체질이 약하거나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소량의 음주를 하는 사람은 활발히 사회 생활을 하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는 성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사실은 그리스 이카리아 주민들의 생활 습관이다. 세계 5대 ‘블루 존’(건강 장수 지역)의 하나인 이곳은 주민 8천명 중 1/3이 90세 이상이며 이들 대부분은 건강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비결로 꼽히는 것이 강한 사회적 유대, 운동의 습관화, 그리고 콩과 견과류, 통곡류와 해산물, 올리브 기름을 주로 하는 지중해식 다이어트다. 이들의 또 하나 특징은 매일 소량의 적 포도주를 마신다는 점이다.

음주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포도주를 마셔서가 아니라 마시는데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이들을 따라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각종 연구 자료들이 말해주는 것은 의학을 비롯한 과학적 진실은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연방 보건국 보고서가 소량의 음주도 위험을 “높인다”가 아니고 “높일 수 있다”로 돼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단 여기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적당량의 음주에 한해서다. 지나친 음주가 몸에 나쁘다는 데는 아무 이론이 없다. 하기야 지나친 식사부터 지나친 운동에 이르기까지 “지나친” 자가 붙어 좋은 것은 없다.

또 하나는 통계의 장난이다. “세상에는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는 말과 같이 통계는 쓰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결론을 오도할 수 있다. 음주로 매년 10만 명의 암 환자가 발생한다면 많은 것 같지만 적당량의 음주로 죽는 암 환자는 전체의 0.6%라고 하면 매우 적은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자료를 모두 소화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각자의 몫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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