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식민지로 갈라져 있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 미 합중국이 된 결정적 계기를 들라면 ‘보스톤 티 파티’ 사건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1773년 영국 정부는 재정난 타개를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영국 식민지가 수입하는 차에 파운드당 3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자 인디언으로 변장한 식민지 주민들은 차를 싣고 온 배에 몰래 올라타 342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졌다.
영국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보스톤에 영국 군대를 주둔시켜 철권 통치를 시작했으며 이는 1775년 렉싱턴과 콩코드에서의 식민지 민병대와 영국 군대와의 충돌로 이어진다. 이것이 미 독립 전쟁의 시작이다.
70여년 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당시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등 주요 와인 재배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오스트리아는 이곳의 와인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고 있던 피에드몬테 지역 와인에 대한 관세를 2배로 올린다. 이에 분노해 독립 전쟁에 나선 것이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3걸’ 중 2명인 가리발디와 카부르로 둘 다 와인 제조업자였다. 이 두 사례는 관세가 얼마나 폭발력 있는 이슈인가를 보여준다.
미 건국 초반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관세가 미 정부 세수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이유는 당시 산업 혁명 선발주자로 선진국이던 영국에 비해 미국은 후발주자로 자국 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3년 연방 소득세가 생기고 1930년 통과된 스무트 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관세는 50% 수준에서 5%대로 대폭 내려갔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범 도널드가 지난 주말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 관세를 물리는 행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본격적인 무역 전쟁의 막이 올랐기 때문이다. 관세는 물건 가격을 올림으로써 인플레를 유발하고 국가간 교역을 위축시켜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관세 부과를 강행한 것은 미국이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라던 중상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널드는 이번 명령을 내리면서 마약과 밀입국자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는데 핑계일뿐이다. 자신이 “근대 역사상 최고 협정”이라고 자화자찬한 북미 자유무역 협정(NAFTA)의 후신 USMCA가 체결됐을 때도 마약과 밀입국자는 들어왔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없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석유와 목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미국의 대표 산업의 하나인 자동차의 경우 부품의 13%는 캐나다, 42%는 멕시코가 공급한다. 미 자동차 산업은 2023년 미 총 제조업 생산의 11.2%를 차지했으며 직간접으로 970만개의 일자리가 이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관세가 시행될 경우 차 한 대 가격이 수천 달러씩 오르는 것은 물론 수요가 줄면서 자동차 관련 일자리는 사라지고 공장은 문을 닫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럴 경우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자동차 공장이 있는 텍사스, 미시건, 오하이오의 노동자들로 주로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도널드도 이번 조치로 “약간의 고통”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국 “황금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가가 오르고 실업자가 느는데 어떻게 황금 시대가 올 지 의문이다. 월스트릿 저널은 이번 사태를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불렀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즉시 미국산 오렌지 주스, 위스키, 피넛 버터 등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는데 모두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이 있는 주의 산물이다. 차기 총리로 예상되는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브르 대표도 이에 동의했는데 관세는 단순히 경제적 이슈가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에 중남미의 바나나 공화국 말고는 여기 굴복해서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멕시코도 보복 관세를 예고하고 있고 중국도 WTO 제소와 상응하는 조치를 준비 중인 가운데 도널드는 유럽 연합에도 확실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의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우방인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 연합에 까지 관세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도널드이고 보면 한국도 그 타겟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럴 경우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은 상당할텐데 멋도 모르고 도널드를 찬미하는 일부 한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도널드는 3일 전격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폭락세로 시작했던 미 주식 시장은 낙폭을 줄이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부에서는 이번 관세 부과가 협상용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행정 명령에는 상대방이 보복하면 재보복하는 조항까지 들어 있다.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험난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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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