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2025-01-16 (목) 07:57:29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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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에서 Never say, ‘Never’라는 말이 있지만 결코(Never)라는 말은 절대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금기어(禁忌語)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일들, 단 하루, 심하게 말해 단 1초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뜻,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 못함을 의미해서일 것이다.

이런 논리를 원용한다면 절대적이란 용어 사용 자체에 신중이 필요하다 하겠다. 원래 절대적이란 말은 종교적으로‘절대자의 존재’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물이나 형상들을 말할 때 오직 ‘상대적’인 수식어만 있을 뿐이라 하겠다.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대 사상가들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 성선설(性善說: 맹자 BC 371-289)과 성악설(性惡說: 순자荀子 BC 300-230)이 있으나 이는 오직 인간을 한 단면만을 본,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엄연한 동일현상, 물체를 오직 다른 시각에서 본 결과일 뿐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제각기 다른 부위를 만지고 기술하는 것과 같이 옳은 관찰도, 그른 관찰도 아닌 오직 한쪽으로만 투시된 사실만을 열심히 기술한 것에 불과한 결과일 뿐이다. 어떻게 대사상가들이 그러한 편협함에 경도되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이제껏 들어온 좁은 소견으론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악이란 선함의 부족, 결여현상이라는 상대적 차이일 뿐이다, 라는 것이다.
좌우(左右)라는 말도 그렇다. 영원히 좌우일 것 같지만 오직 상대적일 뿐이다. 오늘의 左가 자신의 左쪽엔 자신은 상대적으로 右가 됨을 우리들이 매일 목격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사실이 이러할 진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죽기 살기로 아귀다툼하며 내가 옳거니, 네가 그르다니 싸움박질은 더 이상 무의미하며 서로가 정력만 소비하는 우둔한 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자명할 노릇이 아닐까. 이젠 그 우둔함에서 의당 벗어나야 할 때다.

서로의 다른 의견들이 의당 있을 수 있겠으나 그 각기 다른 의견들을 취합, 보완하면 멋진 진정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화합과 긍정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 것일까.

오해, 불신, 왜곡의 결과물은 오직 참담할 뿐, 참으로 일을 망치는 데는 으뜸이요, 일의 성취에는 으뜸인 장애물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말이 있다.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 자고 깨면 헛소리 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란 말은 실제론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부귀영화가 속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세상이 아닌가.

절대적 선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라도 보다 더 나은 공동선을 진정 추구하려는 집단들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하루바삐 국내정세가 정돈되어 국민들의 정서와 생활의 안정을 도래하기를 학수고대한다.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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