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예수쟁이 이삿갓’의 소천에

2025-01-06 (월) 08:01:29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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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예수쟁이 김삿갓>의 저자 등촌 이계선 목사가 83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래는 등촌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이메일이다.

“효천 선생… 파킨슨 병에 무릎관절 수술까지 겹쳐서 타자글을 쓸 수 없어요. 45일간 재할원에 갇혀 지내다 일주일 전에 퇴원했습니다. 겨우 굼벵이 타자로 한 시간 30분 만에 성공(?)하여 보내드립니다.”

“지난해 여름문학제에 참석해 보니 꼭 동우회 동창회에 간 기분이었습니다. 거의가 낯선 얼굴인데도 고향의 동생들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그중 회장을 지내신 바다 김해종목사님, 경산 조의호목사님, 은강 지인식목사님이 오셔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회처럼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즐거웠습니다. 내일 모레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동우회 동창회에 나옵시다. 보고 싶은 얼굴들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갖고 말입니다. 아래 회장 공문을 읽어주세요.(2019년 6월 3일)”


나는 이 메일을 받은 후, 며칠뒤 6월 8일 Jones Beach에서 열렸던 ‘해외기독문학협회 모임에서 재회한 것이 등촌과의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맛깔나게 글을 쓰는 문학가로도 뉴욕교계에 잘 알려진 등촌과 나의 처음 만남은 21년 전 미주기독문학동우회(해외기독문학협회 전신) 초대 회장이시던 등촌이 어느 봄날,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며 기독문학동우회에 나를 강사로 초청해 주심으로 시작되었었다.

그때부터 나도 이 모임의 회원이 되었다. 나는 현재의 명칭인 ‘해외기독문학협회’보다 그 당시의 ‘기독문학동우회’란 명칭이 아직도 더 좋다. 소박하고 친근하고 정겹기 때문이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위의 김해종목사님, 조의호목사님에 이어 등촌도 떠나고 말았다.

등촌은 목회를 졸업(?)하고도 병과 친구하며 많은 글을 썼다. ‘돌섬통신’이란 이름으로 아멘넷 등에서 수필을 집필하며 인기를 얻었다. [멀고 먼 앨라배마] [예수쟁이 김삿갓], [하얀 갈대],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등의 저서를 냈다. 특히 2009년 4월에 출판된 [대형교회가 망해야]는 대형교회로 인한 폐해들을 정면으로 비판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등촌은 우찌무라 간조, 함석헌, 유영목, 장기려, 톨스토이를 흠모했다. 등촌은 내가 뉴욕에서 신앙강좌로 교회개혁을 외치고 있는 [일공의 오딧세이] 저자 최영태 선생의 본받을만한 신앙관과 용기에 나와 더불어 응원을 보내기도 했고, 목사들이 설교하기를 꺼리는 금기물들, 기독교의 숨은 골칫덩어리들을 노변좌담처럼 쉽고 재미있게 술술 풀어놓기도 했다.

등촌은 평생 초대교회 시절의 사도행전 목회를 동경했으며, “교회는 계속 거듭나야 하며 목사도 회개하는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해야 한다”고 일갈하는가 하면, ‘기복설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은퇴목사에게 가장 추한모습은 ‘설교구걸’이라며 은퇴한 후에는 대개 설교를 거부했다.

그는 한국적 ‘성공주의’와 ‘성장주의’를 제대로 극복한 목사였다.
목회졸업(?)후, 투병하면서도 생활만은 건강하게 사셨다. “행복은 물물교환처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산 야곱처럼 돈 주고 살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며, “우리 부부는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90%가 흑인들이 사는 지저분하고 무시무시한 시영아파트예요. 우리는 원 베드룸에서 사는 가난뱅이 은퇴노인이고요. 그러니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이런데서 견뎌 낼 수 있겠어요?”라면 익살을 떨며 가난을 행복으로 자랑하며 살다 가셨다.

교회개혁 투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은퇴 후 등촌의 삶은, 아내와 함께 직접 텃밭을 가꾸고, 근처 바닷가에 나가 꽃게를 잡고, 주말에 TV로 농구 경기를 즐기고, 그리고 주일이면 미국 현지인의 교회에 나가 공예배에 참석하는 우리와 똑같은 일반교인의 삶을 살다 가셨다. 기름기가 없이 그저 담백한 삶. 인공 조미료가 전혀 없는 유기농 음식 같은 삶을 살고 떠난 등촌!

“우맹에서 벗어나 내적 자유자가 되십시오. 교회밖에 있는 별과 숲과 사람들에게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는 걸 보도록 하십시오.”라고 자연과 낭만을 사랑하며 나즉히 조언하던 영원한 자유인 이 삿갓 등촌! ’돌섬통신’ 대신 그가 보내줄 흥미진진한 ‘천국통신’이 기다려지는 2024년 마지막 밤이다.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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