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지미 카터(Jimmy Carter)

2024-12-31 (화) 09:03:34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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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카터 전 대통령은 해군 대위로 복무한 뒤 아버지의 땅콩 농장에서 일했다.

이후 민주당으로 조지아주 상원의원(1963-1967)과 조지아 주 주지사(1971-1975)를 지내고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그는 대통령직 기간 동안과 이후의 활동 모두에서 미국과 중동 그리고 한반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업적은 외교, 인권, 그리고 환경보호 분야에서 두드러지며, 퇴임 후에도 지속적인 사회 공헌으로 찬사를 받았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중요한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다.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 협정을 중재하여 중동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고, 두 나라 간의 역사적인 평화 조약을 이끌어냈다. 이 협정으로 카터 대통령의 외교적 능력을 널리 인정받게 했다.


1979년에는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를 변화시켰다. 물론 닉슨 대통령때 처음으로 핑퐁외교를 통하여 시작된 미국과 중국간의 외교 관계 수립의 마침표를 카터 대통령이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는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카터 행정부는 에너지 위기 해결을 위해 에너지 절약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진하였으며,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퇴임 이후 카터 전 대통령은 더욱 활발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갔다. “카터 재단”을 설립하여 전 세계에서 빈곤 퇴치, 보건 증진, 교육 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특히, 카터 재단은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Habitat for Humanity)’와 협력하여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건설에 힘써 14개국에서 4300채의 집을 지원했다.

카터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때 북한 핵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다. 1994년, 그는 당시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대화하고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여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로 인해 북한의 핵 개발 동결과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한반도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는 제2의 카터가 없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레바논, 시리아로 확대 되고 있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실제 시작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부터 시작되었으니 10년 전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데 이 전쟁을 중재하고 하루빨리 멈추게 할 그런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2002년, 그의 평화를 위한 여러 노력과 인권 옹호 활동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활동할수 있는 그의 생의 마지막까지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에 대한 활동을 지속하였고 미국 역사상 가장 긴 77년의 결혼 생활을 한 로즐린 카터 여사를 지난해 11월 96세의 나이로 먼저 보내고100세가 되는 2024년 12월 29일 별세했다.

퇴임후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직접 집을 짓기도 하면서 훨씬더 많은 활동을 하면서 재임 기간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 평가와 함께 미국인과 세계인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다.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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