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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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여행길

2024-12-17 (화)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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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싱가포르에서 인천국제공항에 11월26일 새벽에 우리들은 도착하였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내 집에 온것 같은 기분이다. 짐도 갈아타야할 비행기에 자동으로 옮겨 싣었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안도의 숨을 쉬며 비행기를 타야할 게이트를 찾아 자리잡고 앉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은 이웃 나라들이 생각 하기에 건축물이 너무 휼륭해 견학까지 다녀 갔다는 공항이다. 사방으로 휘황찬란한 불빛에 촌사람처럼 두리번 거리며 앉아 있었다. 이방인의 생활로 살아 온지도 꽤나 되어 별 감정이 없었을 것 같았는데 내 고향이 있고, 내가 자란 고국땅, 웬지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모닝 커피에 달달한 도넛에, 어느분들은 아침 해장국도 잡수시고 오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데 큰 근심 거리가 생기고 있었다. 창밖으로 눈이 예사롭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쌓이지는 않고 녹아 내리는 것도 보였다. 좀 기다리고 있자니 날씨 관계로 탑승 시간이 한시간 늦어진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우리 일행들은 침묵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볼뿐 그냥 기다려야만 했다. 한시간 후 탑승이 시작 되었다. 이제 집에 가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작은 짐과 비행기표를 손에 들고 좌석 번호를 찾아 각자 자리에 앉았다. 한 식구처럼 몇날 며칠을 같이 생활하던 일행들은 어디에 계실까 하고 키가 작은 나는 목을 빼며 두리번거렸다. 가깝게도 앉으시고 멀리도 앉아 계셨다.

소음이 잦아들고 조용해지더니 안전수칙 영상이 보이며 벨트를 꼭 매시라는 고운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비행기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내 모든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활주로에 있는 눈을 치우기 위해 한 시간정도 지연 될 것이라 했다. 그러더니 삼십분마다 한시간 정도 늦어진다는 방송이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계속 나왔다. 이제는 비행기에 쌓인 눈을 청소하기 위해 한시간 가량 늦어진다는 방송이었다. 한꺼번에 서너시간 하면 손님들이 더 지루함을 느낄테니 어쩔 수 없이 짧은 느낌의 한 시간만이라고 방송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스스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누군들 이 상황에 무슨 재주가 있으랴”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승객들은 4-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꼼짝 없이 벌 받는 아이들 처럼 앉아 있어야 했다.

어느듯 배에서도 쪼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나만 그렇겠는가…. 재차 방송이 들려왔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밀려서 순서를 기다리니 뜨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방송이다.
캄캄한 한 밤중을 지나 여명이 밝아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뜰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했다.

지금 이 시대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된 세상이라 말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지금을 디지털 시대라 부른다. 상상을 초월한 변화된 세상,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많은 기기들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처럼 인간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존재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지없이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절 없이 약해지는 존재이다.

한주먹 손에 쥐면 사르르 녹아 내리는 눈 때문에 이처럼 꼼짝 못했던 시간들, 아름들이 통나무가 폭풍속에 성냥개비 쌓아 올렸다 콧바람에 넘어지는 것처럼 쓰러져도 속수무책 어쩔 수가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기다린 시간에 보람을 느끼듯 힘찬 엔진 소리를 내며 비행기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뜨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세상이야” 하며 비행기는 힘을 내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승무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구수한 음식 냄새가 허기를 더 느끼게 했다. 대한항공 기내 식사는 비빔밥으로 찬사를 받더니 나에게는 된장 덮밥이라고 하는 새로운 메뉴가 인기를 끓었다. 역시 나도 한국 할머니 인지라 건건 찜찜한 음식을 먹어야 맛있고 속이 편안하다보니 냄새도 없이 깔끔한 된장 덮밥 맛에 더 먹고싶은 욕심스러운 생각도 가지게 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과 같이 긴 기다림의 시간과 열세 시간의 긴 비행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출구를 나오는데 승무원들의 웃음짓는 미소가 다른 때보다 더 밝고 정스러웠다. 그 밝은 미소들이 왜 정다운지는 어떤 설명이 필요 없는 일들이었다.

힘들고, 지루하고, 불안했지만 잘 도착 한 것에 진한 감사를 드렸다. 공항에서 집에 오는 길은 낯설지 않고 정든 길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려 있듯, 갑진년 용의 해도 아쉬운듯 석양을 바라본다.

떡가루처럼 자자분한 눈송이들이 저희들보다 몇 백배나 큰 비행기를 덮어 우리들을 힘들게 했던 여행길, 우리 일행들은 아주 먼훗날 만나면 “아! 그날” 하며 더 많아진 흰 머리에 더많아진 주름진 얼굴로 소리내어 웃어가며 이야기 꽃을 피우겠지.
지나간 일들을 되짚어 이야기 한다는 것을 추억이라 했던가.
바람이 일더니 하늘이 잿빛이다. 눈이 오려나.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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