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7일 폭설이 내린 강원 설악산국립공원 내 한계령 도로 옆.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이동을 돕기 위해 부분 개방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 지점들은 눈이 쌓이면서 막혀 있었다. 심지어 한 곳은 울타리가 무너져 모니터링을 위해 달아놓은 무인 카메라가 엉뚱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다른 곳 역시 카메라 렌즈 구멍에 눈이 쌓이면서 그 기능을 다하기 어려워 보였다.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제설 차량이 와서 눈을 도로 옆으로 치워 쌓이게 되면 산양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며 "정부가 내놓은 울타리 부분 개방의 실효성이 없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2. 지난 21일 강원 양구군 동면 돌산령로 도로. ASF 차단 울타리 부분 개방 지점 2곳에는 윤형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다. 환경부가 개방한 곳에 국방부가 시민 출입 등을 이유로 철조망을 쳐 막아놓은 것이다. 정 국장은 “폭설로 인해 탈진한 산양이 힘들게 부분 개방 지점을 찾았어도 눈을 치워주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며 “이렇게 철조망까지 쳐 있으면 산양이 빠져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겨울(2024년 1~5월) 산양 1,042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면서 환경부와 국가유산청은 지난달 27일 합동 대책을 내놨다. 부처 간 협업, ASF 차단 울타리 개방 등이 시급하다는 보도와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합동 대책 중에는 ASF 차단 울타리 23개 지점을 추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올해 5월부터 인제군, 양구군 등에서 21개 지점을 4m씩 개방해 모니터링해오던 환경부가 산양의 행동권(약 0.5~2㎢)을 고려, 미시령과 한계령을 중심으로 23개 지점을 추가로 열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시령 구간은 약 880m당, 한계령 구간은 약 950m당 1개 지점이 개방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지만, 실제 폭설이 내리자 산양의 이동은 물론 모니터링에 한계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군사 지역과 연관된 부분은 폭설과 관계없이 산양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ASF 울타리 부분 개방 총 44개 지점 중 3곳에 윤형 철조망이 설치된 게 확인됐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철조망이 설치된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방부와 해당 부대에 제거 협조 요청을 했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국장은 “산양의 사체 상당수가 민통선이나 군부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고 먹이 급이대도 관련 지역에 설치했거나 할 예정임을 감안한다면 국방부나 해당 부대의 협조가 필수임에도 처음부터 논의가 되지 않았던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겨울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특정된 731마리 가운데 민통선과 군부대 내 발견된 비율은 66.3%(485마리)에 달한다. 윤형 철조망뿐 아니라 해당 지역 출입 문제, 먹이 급이대 관리, 구조 신고, 사체 처리 등 산양 구조를 위해서는 군부대의 협조가 필수라는 얘기다.
산양 구조에 나서는 양구 산양·사향노루센터도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당 지역 출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조재운 산양·사향노루센터장은 “군부대가 관할하는 지역은 눈이 오면 바로 통제되기 때문에 먹이 주기뿐아니라 구조와 관리 시기를 놓치게 된다"며 “고정적으로 출입하는 전문 구조자에 한해서는 출입을 허용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산양 구조를 위한 예산이 긴급 편성되면서 폭설 시 산양의 고립 및 동사 방지를 위한 쉼터(30개소)와 먹이 급이대(22개소) 추가 설치, 인력 확보 등을 통해 올겨울 산양이 떼죽음당하는 걸 막기 위한 준비에도 한창이다. 조 센터장은 구조율을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계류 시설 확보와 군부대, 시민들의 발 빠른 신고를 꼽았다. 그는 “구조할 때 산양의 뿔을 당겨 버티는 정도만 봐도 살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있다"며 “그만큼 선제적 구조가 중요한데 계류 시설을 보다 늘릴 수 있다면 지난겨울보다 구조율을 두세 배 정도는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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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동물복지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