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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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나훈아 어록

2024-11-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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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대기 중(대기인원 3,000명 이상)”, “땡, 불발되었습니다.”, “헉, 나도.”, “ 다음주 화요일에 만나요.”, “셀폰보다 피시방에서 확률이 높대.”, “예매시간 전 미리 예매사이트 접속해야해.”, “될 때까지 매주 화요일 도전이다.”, “혹시 취소표 있나 가끔 들어가서 봐.”
7일 후, 다시 카톡방이 뜨겁다.

“10시 오픈”, “모두 해보자.”, “화이팅!”, “지금 들어가.”, “난 들어와 있다, ㅎㅎ ”, “나도.” “2분 전”, “좌석 고르지 말고 보이는 거 아무거나 눌러.” “대기인원 2,000명이상”
“ㅎㅎ 예매성공!” , “우와 멋지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

나훈아 ‘2024 LAST CONCERT’ 후반기 일정이 대전부터 시작하여 강릉, 안동, 진주, 광주, 대구, 부산, 서울 총 8개도시에서 공연되었거나 공연 중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3분 안에 예매가 끝나버리니 나이든 사람들은 표를 구할 수가 없어 아들딸이나 손자손녀, 조카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조카아이들 덕분에 ‘2024 강릉 라스트 콘서트-고마웠습니다’ 를 보러갈 수 있었다.


1966년 데뷔하여 가수생활 58년 만에 본인이 작사작곡한 히트곡만 800여개, 발표한 곡 2,800여곡을 지닌, 가황(歌皇)이라 불리는 나훈아(77)는 26일 고향역을 시작으로 고장난 벽시계, 청춘을 돌려다오, 남자의 인생, 18세 순이, 영영, 울어라 열풍아, My Way, 테스형, 홍시, 기장갈매기 등 인생철학이 담긴 노래들을 원없이 들려주었다.

중후한 저음에 절묘한 고음, 뒤집고 꺾고 굴리는 창법으로 구슬프고 흐느끼고 지르면서, 때로 따스하게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특히 전통 민요에서 습득한 나훈아만의 꺽기창법으로 부른 ‘울어라 열풍아’는 눈 호강 귀 호강을 단단히 시켜주었다. 흰 턱수염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기타를 치며 “그 누구가 알아주나 기막힌 내사랑을/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관객들은 따라부르며 환호했다.

1996년 일본 오사까 공연 연습 때는 “쾌지나 칭칭나네/음음음음” 노래하고 정작 공연때는 “쾌지나 칭칭나네/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일본 우익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자 “쥑일라믄 직이뿌라(죽일려면 죽여봐)” 베짱으로 밀고나갔다는 그다.

2008년 여배우와의 스캔들에 당당히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말을 지어내지 못하게 했던 그는 그 시절을 ‘공(空)이라는 노래의 후렴귀인 ‘띠리 띠리 띠리리’를 부르며 넘어갔다.

노래는 물론 더할 바 없이 좋았지만 나훈아 어록(語錄)으로 남겨질만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 나이가 되면 좀 쉽게 노래하는 법을 압니다. 그렇게 하지않겠습니다. 벌써 속옷이 젖을 정도지만 끝까지 정직하게 노래하겠습니다. 박자도 딱 딱 맞추겠습니다. ”

“관객 여러분이 저의 스승입니다. 소홀하게 노래를 만들면 관객들은 냉정합니다. 거들떠도 안봅니다. 그래서 혼자서 책읽고 생각하고 연습도 엄청합니다. 제가 기획하고 연출한 무대입니다. 이번 공연을 울지않고 끝까지 잘해낼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잘할 겁니다. 오늘 무조건 저는 잘하겠습니다. ”


“몇년 전부터 마이크를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은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 저의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실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습니다.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이제 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가고 싶은 곳에 구경도 다니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두시간 예정시간보다 “또! 또오!(앵콜대신 나훈아가 가르쳐준 한국말)하는 관객의 요청으로 30분을 더 노래한 그는 마지막 노래 후에 한참동안 엎드려 큰절을 했다.

‘공(空)’이란 노래의 가사에 “살다보면 알게돼/일러주지 않아도/너나 나나 모두가 어리석다는 것을...잠시 왔다가는 인생/잠시 머물다 간 세상/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살다보면 알게돼/버린다는 의미를/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띠리 띠리 띠리 띠리 띠리,,,,”가 나온다. 이 구절이 며칠동안 귓전에 뱅뱅 울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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