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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서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2024-11-04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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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에게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내리고 각각 콘스탄티노플과 로마의 통치를 맡겼다. 로마제국이 두 지역으로 분할되자 그 위상과 지배력은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서로마 북방 국경에서 호시탐탐 로마 침공을 노리던 야만족 서고트족(Visigoths)에게는 절호의 침략 기회였다. 이때 서로마의 황제 호노리우스는 한적한 농촌에 머물면서 쾌략 생활에 빠져있었다.

로마 군병은 군기가 이완되어 훈련을 하지 않았다. 용맹스러운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Alarik)은 로마 군단과 싸움다운 싸움 한번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410년 8월 24일 전격 로마를 접수했다. (프리츠 하이켈하임의 ‘하이켈하임 로마사’ 중에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의 집권 초기의 업적은 탁월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초기 업적에 자만하여 로마를 떠나 농촌 별장에 우거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이 빈 틈을 노려 로마 북방 국경에서 굴기하던 서고트족은 거세게 일어났다. 제일 먼저 서로마를 침공했다.

성취감에 깊이 도취되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휘하의 군대를 성실하게 훈련시키지 않았다. 황제의 위를 이어받은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는 사치와 무기력함, 미래를 대비할 줄 모르는 나태에 깊이 빠져있어서 제국의 비극적 종말을 재촉했다.

395년 1월에 전설적인 서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밀라노 호화별장에서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그 소식을 접한 서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는 용수철처럼 일어나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속도감을 가지고 서로마를 휩쓸었다. 서고트족이 서로마에게 지불해야 할 보조금 삭감을 거부당했다는 것이 침공의 이유였다.

계속적 승리에 기세가 등등했던 서로마 황제들의 탐욕과 야망은 멈출 줄 몰랐다. 서로마는 끊임없는 탐욕과 야망을 절제하지 못했고 결국 망했다. 탐욕과 야망을 달성한 후에 다가오는 자아도취적 성취감은 서로마가 결정적 멸망으로 빠져드는 원인이다.

성취감에 깊이 도취되었다가 큰 환란을 겪은 인물로 종종 다윗의 이름이 소환된다. 왕권 경쟁자 사울 왕이 전쟁터에서 갑자기 죽은 후 다윗은 승승장구했다. 다윗은 12 지파를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다윗의 성취감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이때부터 다윗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고 제정(祭政)권을 행사하는 절대군주를 꿈꿨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3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한 일은 다윗의 자기 성취감과 자기 자랑의 극치였다. 이후로 다윗은 국가 내란과 가정 분열의 비극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여러 번 말했다. “성취감에 도취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선지자를 존경하십시오. 왕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면 왕과 백성은 모두 잘 됩니다. 하지만 왕의 권력을 믿고 자신의 야망만 추구한다면 왕도 나라도 망합니다.” 우쭐거림과 성취감의 도취는 동의어(同義語)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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