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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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43년을 살고 묻힌 곳, 스위스 몬타뇰라

2024-11-03 (일)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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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43년을 살고 묻힌 곳, 스위스 몬타뇰라

몬테뇰라에서 바라 본 루가노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

헤르만 헤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작가 중 한 명이다.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셰익스피어, 괴테, 토마스 만, 헤밍웨이보다 더 우위에 있다. 이것은 몇 년 전 네티즌을 상대로 투표한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의 결과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크놀프>,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헤세의 감동적인 작품은 많다. 그 중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지 않은 한국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헤세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아 그가 43년을 살고 묻힌 스위스의 몬타뇰라를 찾았다. 이곳에는 헤세가 거주했던 집은 물론, 헤세 박물관, 헤세 묘지 등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책상, 타자기, 안경, 면도기, 펜, 그림 도구, 모자, 우산 등 그가 사용하던 개인적인 물건과 헤세가 그린 수채화, 헤세가 독자에게 보낸 그림이 있는 편지, 번역본, 초판본 등 여러가지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헤세는 평생 3,000장 정도의 수채화를 그렸으며 35,000장의 답장 편지를 써서 독자들에게 보냈다. 그 중에는 그림 엽서 등 예쁜 수채화 그림을 그려 보낸 것도 있다. 당시 독일 유학생이던 전혜린도 헤세로 부터 그림 엽서를 받았다. 그녀는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섰으며 <데미안>을 번역하여 당대 청년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바 있다.

1916년, 헤세의 주치의 랑(Lang)박사는 심리분석 치료의 한 방편으로 그에게 그림 그리기를 권고한다. 정신과 치료를 마친 헤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몬타뇰라로 거처를 옮겼다. 이혼한 아내(마리아 베르누이)도 정신분열이 악화되자 아이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헤세는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 어느 청춘 이야기’를 출간했다.
1923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헤세가 53세 때 발표한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자신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말한다. 방랑자로 많은 여인들을 만나는 골드문트가 헤세였을까? 실제로 그는 어머니 품같은 마리아 베르누이를 만나 세 아이를 낳았으며 20살이나 어린 루트 벵거를 만나 결혼하고 3년 후 헤어졌다.
니논 돌빈은 베를린 대학교 재학 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동봉하고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고, 내 안에 무언가 강렬한 힘을 느껴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고백한다.
11년이 지난 후 미술사학자가 된 니논(당시 36세)은 헤세(54세)의 세 번째 아내가 됐다. 1946년, 헤르만 헤세는 괴테 문학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날라 온 축하 편지는 7,000통에 달했다. 1947년에는 베른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헤세는 몬타뇰라에서 정원을 가꾸고 낙엽 태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산책하기를 즐겼다.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헤세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화가로서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1921년에는 화집을 출간했고, 사후에는 도쿄, 뉴욕, 샌프란시스코, 마드리드, 룩셈부르크, 함부르크, 삿포로, 서울 등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헤세 박물관에는 그가 그린 그림과 화가인 브루노(큰아들)가 그린 수채화도 수 십 점 전시돼 있다. 1962년 8월 9일, 헤르만 헤세의 주치의(닥터 몰로)는 니논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아침식사 시간이 넘었는데 내려 오지 않는다는 전화였다. 당시 헤세의 서재 열쇠는 헤세와 주치의만 가지고 있었다. 집으로 달려 온 주치의는 떨고 있는 니논을 안심시키며 서재로 들어섰다. 방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는 헤세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입술에는 피가 몇 방울 맺혀 있고 왼쪽 손에는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이 쥐어 있었다. 그의 책상에는 ‘부러진 나뭇가지의 삐걱 소리’라는 그의 마지막 시의 원고도 보였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 그는 부러진 나뭇가지가 되어 하나님을 찾은 것이다. 헤세는 몬타뇰라에 있는 아본디오 성당 묘지에 묻혔다. 4년 후 니논도 헤세 곁에 묻혔다. 묘지는 헤세 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걸어서는 25분 거리에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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