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마디] 감색 볼보 740에 얽힌 이야기

2024-10-07 (월) 김길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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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게도 한이 있다. 오래전 한번은 교회 집사에게 아침 식사 초청이 왔다.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인 동네 다이너에 갔다.

메뉴를 보고 식사를 시켰다. 음식이 나와 막 먹으려 하는데 그 집사가 다짜고짜 나에게 “왜 목사님은 나보다 좋은 차를 타십니까?”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물으니 자기는 볼보240을 타는데 내(목사)가 볼보740을 탈 수 있느냐 는 시비다. 마치 어린아이가 생때를 쓰는 것 처럼 마구 대든다.

어린아이 같아 자초 지정을 설명했다. 미국에 유학와서 신학생 들이 헌차들을 끌고 다니는데 여러 회사 차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나는데 유독 한 목사가 타는 깡통 볼보가 생생 잘달려 "이 다음에 차 살때 볼보를 사야 겠다고 마음 먹고 딜러에 갔는데 해묵은 차를 싸게 준다고 해서 그차를 샀노라"고 긴 설명을 하고난 다음에도 풀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우리 집은 그 집사 집에 렌트를 살 때이다. 기분이 잡쳤다. 자존심이 상했다. 집 사람이 자영업을 하니 최소한 월 5000불은 벌고 나도 개척 교회를 하니 몇 푼은 받는다. 해묵은 볼보는 탈만하다.

성경에 목회자에게 잘하라 했다. 나의 경험 한 토막은 경상도 시골에서 교편 생활 할때. 하숙집 반찬이 빈약했다.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그런데 먹을 수가 없었다. 돈 몇푼 버는 것은 집에 다 부친다.

포켓이 늘 헐렁하다. 그 때 다니는 교회에 부흥집회가 있단다. 헐렁한 주머니를 털어 부흥사에게 닭을 사드리라 닭값을 내 놓았다. 그 부흥사에게 성령 체험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 모양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때는 볼보가 귀한 차였다. 40년이 지난 그 때 일이 아직도 지울수 없는 것은 마음에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설령 자기보다 좋은 차를 타도 기뻐 할 일이지 따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 사정을 들었으면 이해를 해야지.

결국 그 차는 그냥 학생인 부목사에게 주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받고 유니온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 신학 대학 교수가 되었다.

<김길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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