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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는 어떤 기준으로 침·뜸 선택할까

2024-09-18 (수)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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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서 환자를 진단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부분은 “이 병을 한약으로 치료할까, 침으로 치료할까?” 하는 점이다. 옛 선인들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1구2침3약’이라는 한의학 치료법 선택 기준을 세워 두었다. 이는 치료 방법을 선택할 때 우선은 침, 그 다음은 뜸, 마지막으로 한약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질환은 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니 먼저 침을 사용하고, 효과가 부족하면 뜸을, 그것마저도 충분하지 않으면 한약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진료하는 현대의 한의사에게는 이 일괄적인 기준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아 고민이다. 과거에는 의학적인 고려만 하면 되었던 이 판단에, 지금은 추가로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고민, 의학적 고려 1 - 병의 생리


한의사가 주 치료법을 선택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은 병의 생리이다. 즉, 침이 잘 듣는 질환은 침으로, 한약이 잘 듣는 질환은 한약으로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결정하기 위해 병의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나 다리를 삐끗한 근골격계 질환이라면 침의 효과가 뛰어날 것이고, 오랫동안 고생해온 소화기 질환이나 피로 같은 만성 질환이라면 한약의 효과가 침보다 빠르고 우수하다.

그러므로 환자가 내원한 이유에 가장 신속하고 뛰어난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한의사로서의 첫 번째 고민, ‘병의 생리’이다.

두 번째 고민, 의학적 고려 2 - 치료의 우선순위

한의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침 치료의 큰 장점은 환자에게 곧바로 적용할 수 있고, 치료 반응도 즉각적이며 신속하다는 점이다. 침을 놓자마자 통증이 사라지거나 마비 증상이 풀리고, 움직이지 않던 근육이나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또한 막혀 있던 말문이 트이거나,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변이 나오고, 체기로 정체된 위장이 움직이는 등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병의 경과가 급성이거나 발생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경우에는 큰 효과를 바로 볼 수 있으므로 침을 주 치료법으로 선택한다. 즉, 환자가 가장 큰 불편을 호소하는 증상이 침으로 즉시 호전될 수 있다면, 침 치료부터 시작해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소화불량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이를 근본부터 고치려면 비위를 강화하는 보약을 긴 기간 복용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체기로 인해 구역감과 두통, 복통을 호소한다면 침부터 놓아 우선 편하게 해주는 것이 치료의 최우선 원칙이 된다.

반면에 한약은 침과 뜸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하거나 오랜 치료 기간을 요하는 병에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침과 뜸만으로 몸 안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힘든 경우, 외부에서 부족함을 채워주고 몸 안에 과하게 쌓인 것들을 땀이나 대소변 등을 통해 내보내는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한약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 만성적으로 진행되어 급한 증상이 없다면, 자잘한 증상 몇 가지를 개선하기 위해 침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더 깊은 원인이 되는 오래된 결핍을 근본부터 보해주는 한약 치료가 더 우선시된다. 이것이 치료법을 정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두 번째 의학적 고려, ‘치료의 우선순위’이다.

현대 한의사의 새로운 고민, 다양한 문화와 가치적 차이를 고려하기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다양한 문화화 가치의 차이를 지닌 이들을 돌보는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새로운 고민들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위해, 병의 생리와 치료의 우선순위를 고려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의료 환경의 변화와 환자들의 다양한 요구로 인해 한의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환자의 여러 변수들을 최대한 감안하면서 침, 뜸, 한약 어느 한 치료법을 고집하기 보단, 이 모두를 적절히 활용하여 최상의 치료 효과를 얻는 것일 것이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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