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료 대란을 보며

2024-09-16 (월) 박계하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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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의대생 2,000명 증원 계획과 이에 반발한 의료계와의 분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채 해를 넘기고, 지난 2월에는 8,900명에 이르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서 돌아오지 않고 응급실 조차 찾지 못하는 응급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돌다가 생명을 잃은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정부는 군의관으로 보충하고 있으나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응급실에 남아서 고생하는 동료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야지와 조롱으로 그들마저 응급실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니,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로서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는 마음은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의 입장은 지난 19년 동안이나 의대생 증원이 없어 환자 1,000명당 의사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최하위에 머무는 의료 후진국이라며 의대생 증원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의료계 입장은 환자당 5분 진료, 하루에 80여명에 이르는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지나치게 낮은 수가로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로 우선 국민 보험제도의 개선과 수가 인상 등 의료개혁을 우선하고 점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 추세에 직면해 있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소아과 의사와 산부인과 의사가 전공을 바꾸어야 할 상황인 시점에서 2,000명이나 되는 대규모 증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옳고 그름을 따질 시기가 아니다. 이미 그 단계는 지났다.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생명을 잃어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의사나 전공의 들은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병자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병자를 죽이는 행위나 다를 바 없다.

예로부터 의술은 인술이라고 했다. 의사는 병자의 생명을 다루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인술은 아픈 환자나 죽어가는 생명을 어진 심정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의료 수단과 정성을 다해 그들을 구하는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말 하는 필자를 구시대의 낡은 생각이라고 할 것이나 나는 내 주변에서 훌륭한 의사들을 적잖이 본다. 의사 모두가 의술로 상업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돈벌이 의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성으로 인술을 베푸는 좋은 의사가 많다.

주 6일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도 일요일마다 빈촌에 나가서 의사헤택을 못받는 가난한 병자를 돌보아 주는 친구 P도 있고, Cardiac and Vascular Care의 Dr. Kim 과 같이 정성으로 심장병 환자들를 돌보아 재활시켜 주는 고마운 의사도 있다. 반드시 슈바이처나 장기려 박사 같은 성인은 아니어도 이들 또한 거룩한 의사다.

군인이 총을 놓고 싸울 수 없듯이 의사는 청진기를 놓고 싸울 수 없다. 그들이 병원으로 돌아가서 다시 청진기를 들고 아파서 신음하는 환자를 돌볼 때 모든 시민들은 그대들의 편에 서서 같이 싸울 것이다.

<박계하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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