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F. 윌 칼럼] 형법 과잉 시대

2024-09-04 (수)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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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내용으로 채워진 닐 M. 고서치 연방 대법관의 새 책은 행여 법을 어길세라 조심스레 행동하는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법에 대한 무지가 법을 어긴 데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진부한 말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현행 형법체계 아래서는 검사가 마음 먹기에 따라 거의 모든 미국인이 중범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고서치 대법관이 제이니 니체와 공동으로 펴낸 “과잉 규제: 과다한 법의 법의 부작용”이라는 제목의 책에는 로마제국의 황제 카리굴라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카리굴라 황제는 늘 높은 기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새 법령을 공포했고, 이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로마 시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법을 어긴 혐의로 언제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지만, 카리굴라의 로마와 지금의 공화국 사이의 유사점은 진보주의라는 공통된 이념적 성향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

고서치 대법관의 지적대로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연방법률은 단 한권의 법전에 수록되어 있었다. 2018년에 이르러 연방법전은 총 6만쪽에 달하는 54권으로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의회는 매년 약 200만-300만 단어로 구성된 온갖 법률을 제정했다. 법안의 평균 길이도 1950년대에 비해 9배가 늘어났다. 정부기관들은 그들이 제안한 규정과 확정된 법규를 연방관보에 게재한다. 1936년 16쪽으로 시작한 관보는 매년 평균 7만여 쪽이 추가된다. 2021년까지 연방규정집은 200권으로 늘어났다. 최근 10년 사이에 연방 기관은 대략 1만 3,000건의 규정 안내문을 쏟아냈다.


법을 모른다는게 법을 어긴데 대한 변명이 될까? 법에 대한 무지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의회는 매년 평균 56개의 새로운 연방 범죄를 추가로 지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연방법으로 정한 범죄가 5,000건에 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모른다. 이외에 의회가 직접 제정하진 않았으나 위반시 형사제제가 가해지는 연방기구의 규정만도 최소한 30만 건을 헤아린다.

고서치 대법관이 제시한 많은 예시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우스꽝스러운 것들 조차 웃지못할 처벌조항을 담고 있다. 미주리주의 한 도서관에서 열린 어린이 쇼가 끝난 뒤, 마술 연기를 선보인 출연자는 연방 농무부의 관리로부터 “면허증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마술 공연에서 3파운드짜리 토끼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수 십년전, 의회는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는 특정 동물의 판매업자는 연방 면허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수 차례의 개정을 통해 “카니발, 서커스, 동물원”과 같은 곳에서 직접 동물을 다루는 조련사나 이들을 보여주는 “전시자”까지 면허증 취득 대상에 포함됐다.

마술사 면허증 소지자에게는 예고없는 가택 점검, 관할 정부 기관에 타지 방문 일정 사전통고, 토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가상의 위험에 대한 비상대책 수립 등의 의무가 따른다. 연방 관리는 어린이 쇼에 출연한 마술사에게 토끼를 위한 여행용 우리를 운반할 때 손으로 어느 쪽을 잡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화살표 스티커를 부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술사가 우리 위쪽에 달린 손잡이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묻자 관리는 도리질을 쳤고, 얼마 후 정부는 규정을 어긴 마술사에게 위쪽을 가리키는 스티커 200장을 보내주었다.

지난 2003년 10월, 세 대의 픽업트럭에서 뛰어내린 검은 방탄복 차림에 권총을 착용한 연방요원들은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채 난초를 수입한 67세 조지아주 남성의 양 손과 두 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워 연행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규범의 준수여부는 더 이상 형법의 집행대상이 아니지만 그 숫자는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갈수록 확대되는 형법은 사람들을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진보주의의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과 전문가들이 세분해 놓은 각종 제한으로부터의 이탈을 벌주려는 고약스런 갈증의 표현이다. 고서치 대법관은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인 성인의 70%는 - 대부분 그같은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 실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법행위를 저지른다”는 한 법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이처럼 순응을 강요하는 진보주의는 용서를 모르는 보복적 비열함을 조장한다. 카톨릭 소셜서비스(CSS)가 동성애 커플 가정에 어린이를 위탁하는 것을 거부하자 필라델피아 시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 연방 대법원의 만장일치 위헌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 다시 위탁보호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CSS 지정 가정에 맡겨진 형제자매와 재결합하지 못하도록 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진보가 정부의 규제 기구에 권력이 집중되는 정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1950년과 2019년 사이에 주정부에 제공된 연방지원금은 700억 달러에서 7,000억 달러로 (인플레이션 조정을 감안해) 900% 인상됐지만 여기에는 사슬을 연상시키는 조건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제임스 매디슨은 “너무도 방대해 읽어 볼 수 없고” “일관성이 없어 이해가 불가능하며” “끊임없는 개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의 법이 내일이면 어떻게 바뀔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여기서 법의 증식이 법치주의를 약화시킨다는 메디슨의 역설이 나온다. “법은 행동 규칙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도 않고 고정되지도 않은 것이 어떻게 규칙이 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많은 법과 규칙에 파묻힌 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 모습은 결코 자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카리굴라 황제의 유령이 웃고 있다.

<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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