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잊어버린 것조차 모르고 사는 세상에서…

2024-09-03 (화) 이규성 수필가, VA
크게 작게
지난 5월 중순,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출국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학기 중에 대학원 강의를 결강하고 출장을 떠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과학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미래 사회를 그린 헉슬리(Aldous Huxley)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속 현실이 내 곁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출국 준비도 매우 간단했다. 세면도구가 든 가방, 봄 학기 강의 계획서, 랲탑 컴퓨터(Laptop Computer)와 스마트 폰, 그리고 검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USB 하나가 전부였다. 한국에 도착한 후 미국 동부 시각에 맞춰 줌(Zoom)으로 4주간 강의를 진행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평상시와 다름없이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했다.

코로나19는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스마트 폰 과 컴퓨터가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이 두 가지 도구 없이는 세상과의 소통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찰이나 고위직에서 사용하던 무전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지닌 스마트 폰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스마트 폰으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집마다 모든 가족이 자신의 전화를 마치 신줏단지처럼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스마트 워치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즉시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헉슬리의 예언처럼, 궁금한 것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스마트 폰을 찾는다. 스마트 폰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나 전화번호를 즉시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최신 스마트 워치는 우리의 신체 리듬을 관리하고, 해야 할 일을 알림으로 알려 주 는 등 더 발전된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두 가지 도구를 항상 휴대하며,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고 원하는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어른이든 아이든 자리에 앉기만 하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운전 중에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헉슬리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사람은 쾌락에 의해 조종당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더 이상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또한, 헉슬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는 것을 두려 워했다.”고 했는데 이 말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이라도 들고 다니며 읽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는 새로운 풍경이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편리하고 쾌적한 멋진 신세계에 익숙해 지면서, 기존의 행동 양식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 는 점점 잊혀가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와 행동 양식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에 연결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음식점에서는 메뉴판 대신 식탁 위의 QR 코드를 스캔해 음식 종류와 가격을 확인하고, 공항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 는 등 정보 접근성과 편리함이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종종 노년층에게 어려움을 안겨 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온 노년층의 지혜와 경험(Know how)은 점점 잊혀가고, 젊은 세대는 필요한 정보를 어디 서 어떻게 찾을지(know where)를 아는 새로운 형태의 지혜가 강조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전통과 미풍양속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문화 에 빠져들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그 가치를 다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잊어버린 것조차 모르고 사는 세상에서, 기술의 발전과 전통이 조화롭게 공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규성 수필가, V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