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퇴장의 미학

2024-08-30 (금) 신석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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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을 말하거나 생각할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많이 인용한다. 이 말의 주인공은 버나드 바룩(Bernard Baruch)이다. 이분을 설명하는 건 불필요하다. 워낙 유명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라는 숫자를 그렇게 만만히 볼 수는 없다.

그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글 한 줄을 소개한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실패, 내가 저지른 거의 모든 과오들, 그리고 사적이나 공적인 모든 어리석음의 대부분은 다 생각 없이 행한 행동의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은퇴는 가벼운 무게가 아니라 진지하게 다뤄야 할 경점에 도달했다는 것과 같다.

인생에 있어 퇴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소위 말하는 은퇴다. 나이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아닌 말로 심신에 어떤 한계를 느낄 때 영위하던 생업이나 천직을 내려놓는 행위이다. 얼마 전 뉴욕의 중진 목사님 중에 한 분이 조기 은퇴를 결정하고 후임 목사에게 바통을 넘겼다는 기사가 있었다. 신선한 결단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진리다. 밀어내도 가지 않겠다고 우기다가 지저분해지는 모습을 더러 목격한다. 그런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은퇴를 결정하고 물러나는 분들을 보면 보기에 아름답다.

만나면 헤어지는 회자정리는 우리들의 상식이지만, 그래도 작별을 어떻게 하느냐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닌가. 작별을 잘하고 퇴장을 잘하는 것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가을은 퇴장을 교훈하는 계절이다. 무성했던 초목들도 가을이 되면 퇴장의 쓸쓸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다시 만날 기약을 동시에 던져주므로 이별이 마냥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고인이지만 유명한 배우 캐더린 햅번이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파티에서 언제 떠나는 게 가장 좋은지를 몰라 파티에 오래 머물곤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알아요. 파티에서 언제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그녀는 말했다. “파티에서 가장 추한 것은 떠날 때 떠나지 못하다가 이제 파티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외투를 찾을 때다. 떠날 때 떠날 수 있는 건 용기다.” 참으로 일리 있는 말이다.

아름다운 퇴장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모든 것은 종지부가 있다. 피날레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은퇴 후의 모습이다.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하고도 남을 인생이 아직도 무대에서 서성이는 추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 하나의 예가 한국 정가에서 보는 남루한 인물들의 여전한 잘난 척이다. 최신 뉴스를 보면 한국의 노회한 늙은 정객이 집안에서 넘어져 깨진 이마를 꿰매고 찍은 사진이 나왔다. 늙으면 넘어짐을 조심해야 한다지만 낙상도 뉴스로 만드는 재주가 비상하다.

노인 트럼프도 귓가에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사진을 전리품처럼 배포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진 찍히는 것에 혈안이 된 노년들의 스냅이다. 며칠 전 한국 국회 청문회에서는 벌써 한물 간 야당 의원이 어디선가 나타나 고성을 지르는 풍경도 있었다. 퇴장을 모르는 노추의 짠한 모습들이다.

그런 뜻으로 보면 근간 보여준 대통령 바이든의 결단은 칭송받아 마땅한 노년의 아름다움이다. 언감생심이지만 남은 한분도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이런 결단을 내리고 은퇴를 선언한다면 아마 미국 역사는 그를 기록에 남길 것이다.

미국은 젊어져야 한다. 오바마 이후 너무 긴 시간 은퇴가 없는 듯 살았던 미합중국이 은퇴의 미학을 실천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석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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