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티지(Vintage)

2024-08-29 (목) 문성길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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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복고풍(復古風)의 와인을 위시해 패션, 음향기기 등등 전 분야를 망라해 옛 생각을 자아내는 특수하거나 양질의 옛 것 모두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겠다. 1920년대부터 1990년대를 빈티지 시대라고 한다. 유행은 돌고 돌아 특히 여성들 옷차림새에서 두드러진 현상들, 복고풍이 열풍으로, 이러다간 인간들도 그런 표현이 가능할 수 있어져 목록에 편입될 수도, 이땐 고리타분한 본인도 복고풍의 인간 딱지가 붙여질 지도.

사전을 보니 특히 명사로 쓰일 때, 어느 이름 있는 포도 양조장에서 수확이 좋은 포도로 어느 해에 만들어 년도와 양조장 이름을 넣었을 때 이 포도주를 빈티지 포도주라고 한다.

필자는 딸아이가 아버지날 선물로 나의 아주 오래된 고장 난 McIntosh Amplifier(MA6100 1072-1979년도 사이 제작 판매) 수리를 위해 전문점을 찾아 어디가 고장 났는지 진단까지를 해 주겠다 해서 마음이 어린애처럼 설렜다. 소위 Vintage 제품이라 비록 고장 났으나 나의 일급재산 목록에 당당히 상위에 위치해 있음이렸다.


중고품이지만 기능할 때 상당한 가격대, 작고한 음악 애호가였던 후배로부터 물려받은 것, 기능을 얼마동안은 충실히 해주어 이에 어울리는 확성기까지 집사람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그 옛날 서울 종로의 르네상스 음악실을 연상하며 술 한 잔 홀짝 홀짝 마시며 소위 복고풍 흉내를 잔뜩 내가며 “척”해본지도 꽤 오래되어 늘 마음 한 구석이 빈 것처럼 찜찜했었던 터라 딸아이의 선심은 나를 상당히 고무시켜 주었다.

전쟁과 공포, 보릿고개 등을 경험해본 꼰대세대들을 좋게 얘기해 Vintage 세대라고 부른다면 그리 불리어짐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겠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그렇기에 매사에 소심하달까, 그냥 버리지 못하고 그저 끼고 맴돌아 흔히 아낙네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구두창을 윗부분이 낡아질 때까지 수없이 여러 번 갈아 끼우기도, 양복저고리 안창을 양복점에 가 갈아 끼우기도, 좀 그렇기도 하지만 바꿔 끼우고 갈아 끼우고 나면 어엿이 새것과 같아진대야 할 말이 없어질 줄 믿는다. 검약이 뼛속 깊숙이까지 베어 있음이랴! 마냥 나쁘다만 할 수 있을까? 밥한 톨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기에 젊은이들 음식 남김에 잔소리가 휴가 갈 수 없어 그들은 분명 꼰대 빈티지 어른들을 좋아할 리 없겠다.

필자에겐 또 하나 빈티지 물품이 있다. 2001년도 SUV, 16만 마일. 얼마 전 차량사고로 폐차선고를 받으니 500달러 정도 준단다. 숙고 끝에 차를 고치기로 해 거금 6000여 달러를 들였더니 솜씨 좋은 한국인 Autobody Shop에서 거의 신형차로 둔갑시켜 놓았다. 20년이 넘었으니 Antique, Vintage Car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며 10년 더 있으면 어떠할까, 재미있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는지! 우리 가족과의 애환을 장기간 함께 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기에 ‘차’라기 보다 가족의 일원 같기도 해 전번 집엔 차고가 협소해 부득이 이 차를 차고 밖에 주차시키니 금방 때가 끼고 엉망이 되어 참으로 미안, 새집으로 이사해선 차고에 주차시킬 수 있어 그동안 미안했었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의 영원한 빈티지 차여!

<문성길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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