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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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 그리고 지나간 날들

2024-08-13 (화)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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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진 절기중의 하나인 하지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여름철로 접어든다. 여름하면 신나는 원색의 계절이긴 하지만 덥다는 생각과 느낌에는 웬지 끈적하며 곁들여 장마 전선 이라는 단어도 뇌리에 스친다.

장마는 6월 하순에서 7월로 접어드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이 시기에 많은 비가 내린다. 우리나라도 지정학상 아시아 권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걱정과 고민스러운 연중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한달정도 장마비가 계속되다 어느날 빗줄기가 좀 약해지나 싶더니 하늘 저쪽 한편 구름이 뭉글뭉글 밀려나고 한 끝에선 청 하늘이 나더니 햇볕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동작 빠른 아낙네들은 이 틈을 타 빨랫줄에 빨래도 재빠르게 널어놓고 동네 개구장이들도 이 때다 싶어 새 고무신은 아끼느라 헌 고무신을 신고 바지를 둘둘 걷어 붙이고 한 녀석은 삼태기를,또 한 녀석은 깡통을 들고 도랑물 작은 냇가 수멍텅쪽으로 줄달음질 친다. 혹시라도 비가 세차게 내리면 수멍텅은 완전 안전지대다.

나뭇뿌리, 풀뿌리에 엉성한 곳에 삼태기를 밀어 넣고 몇명이 발로 밟아대고 삼태기를 번쩍 들어 올리면 쫙하고 물 빠지는 소리 위에 돌멩이, 사금파리 등 잡동사니와 함께 버들붕어, 미꾸라지, 수염이 긴 큰 새우, 그때는 그것이 지방 사투리인지 징게미라 불렀다. 그리고 작은 새우들과 송사리들은 삼태기 안에서 톡톡 튀어올랐다.

삼태기 안을 들여다 보는 개구쟁이들의 웃음 덮인 그 환한 얼굴들은 정녕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들의 표정이었고 초롱초롱한 까만 눈망울들은 캄캄한 여름밤 하늘의 빛나는 별빛 같았다.
소박하고 천진스러움의 전부였던 꼬마들에게 우주만물의 자연의 섭리가 안겨준 그 작은 것들, 그것에 환호하고 만족해하는 기쁨은 이 세상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순수함이었다.

좋다고 마냥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환하게 들여다 보이는 맑은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퐁당퐁당 소리를 내며 물방울을 튀기며 쪼르르 뽀르르 물 속으로 미끄러 내려가는 소리, 어쩌면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도 같았다.
요즘 장마는 여유도 없고 바람을 일으키는 소용돌이와 함께 토네이도가 남기고 간 흔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뉴스를 보면 온도가 103도라는 숫자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정말 무지하게 더웠다.
여름철의 몹시 더운 기간을 초복, 중복, 말복이라 칭한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예로부터 통풍이 잘 되는 시원한 삼베와 천연 직물인 모시옷을 입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보양식을 먹어가며 여름날의 건강을 지켜 왔다.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과학의 문명속에 더운 여름철도 차만 타면 찬 바람이 겨울 바람처럼 술술 나오고 어디를 가도 빌딩 안에만 들어서면 온도 차이가 급격한 것을 체험한다. 일단은 시원해서 좋은데 급격한 온도 차이에 냉방병이라는 새로운 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여름하면 탐스럽게 생긴 옥수수가 별미다. 구수한 옥수수를 먹다보면 재미있는 동요 생각이 난다. “옥수수 나무 열매에/ 하모니카가 들어 있네/ 니나니 나니나~~~니나니나~~~” 옥수수맛도 더 있고 어깨 춤도 나오는 것 같고 마음이 편해진다.


여름에 맞는 동요가 또 하나 생각난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이 동요의 제목은 ‘산 바람 강 바람’인데 어느 선생님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너무 휼륭하다.

2절 가사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뱃사공이 배를 띄울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데요.”
벽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은 그냥 시원한데 동요속 산 바람 강 바람은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이 해의 여름날도 초복과 중복을 지나 말복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공간속에 모든 것은 지나 간다. 그냥 간다.

<이지현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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