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기 인플레에 커플들 스몰 웨딩 ‘대세’

2024-08-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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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객 수 줄이고 케이크도 작아져
▶웨딩드레스는 심플하고 짧게

▶ 진화 대신 조화·비성수기 결혼
▶웨딩 업계도 스몰 웨딩 상품

장기 인플레에 커플들 스몰 웨딩 ‘대세’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스몰 웨딩이 유행하고 있다. 주택 구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마련을 위해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실용적인 커플도 있다. [로이터]

미국에서도 결혼식이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장기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스몰 웨딩이 주목받고 있다. 웨딩 업계도 이 같은 추세에 맞춰 다양한 스몰 웨딩 상품을 내놓고 있다. 웨딩 업계에 따르면 케이더링, 꽃, 사진 촬영, 음식비, 인건비 등 결혼식 필수 비용이 모두 오르며 결혼식 비용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할 때 약 20%나 급등했다. 비싼 결혼식 비용을 치르는 대신 스몰 웨딩, 또는 아예 결혼식을 생략하고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려는 실용적인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결혼식 필수 비용 모두 상승

웨딩 업계 조사 업체인 웨딩 리포트의 셰인 맥머레이 대표는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정부 지원금 등 추가 소득이 넘쳐 빅 웨딩이 성행했다”라며 “그러나 이제 그런 추세는 찾아볼 수 없고 결혼식 비용을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예비부부가 대부분”이라고 웨딩 업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설명했다.


결혼율은 지난 20년간 지속적인 감소세로 올해도 하락할 전망이다. 결혼율 감소 원인은 크게 사회적, 경제적 요인으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경제적 요인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연방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음식, 반지, 케이크, 샴페인 등의 결혼식 필수 비용이 모두 크게 올라 결혼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건비 상승이 주원인

최근 결혼식을 치렀거나 준비 중인 커플 중 물가 상승 등의 원인 때문에 결혼식 규모를 축소한 커플이 대부분이었다. 실화 대신 비용이 저렴한 조화로 예식장을 꾸미거나 결혼 장소 대여 비용이 저렴한 2월 등 겨울 시즌에 결혼식을 치르는 커플이 많아졌다. 일부 웨딩 업체는 이미 계약을 맺은 뒤에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갑자기 추가 비용을 요구해 결혼식을 앞둔 커플을 울리는 경우까지 있다.

지난 4월 켄터키주 렉싱턴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에린 랭캐스터는 “2023년 결혼식을 목표로 2020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라며 “그 사이 각종 물가가 오르는 바람에 당초 1만 달러였던 결혼식 예산이 2만 6,000달러로 불었다”라고 설명했다. 웨딩 업계에 따르면 결혼식 비용이 급등한 가장 큰 원인은 인건비 상승이다.

결혼식 준비와 진행을 위해 여러 인원이 필요하다. 결혼식장 준비, 식사 접대 인원, 사진 및 비디오 촬영 인원 등 수십 명에서 때로는 수백 명의 인원이 결혼식에 동원된다. 최근 주류와 계란 등 일부 식료품 가격의 상승세는 멈췄지만, 인건비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으로 결혼식 비용 역시 당분간 떨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혼식 비용 주택 다운페이먼트에 보태

웨딩 업계 관계자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웨딩 사진 촬영 업체를 운영하는 크리스토퍼 토드는 비용은 오르는데 스몰 웨딩 추세로 수입은 줄어 최근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다.


팬데믹 이전 시급 50달러를 받던 사진사들이 개스비, 재료비 상승 등을 이유로 이제는 200달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데 격으로 대형 결혼식 고객이 스몰 웨딩으로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어 수입은 크게 줄었다.

시카고에서 웨딩 플래너로 일하는 로지 오코너는 정작 자신의 결혼식은 생략했다. 올해 2월 하객 50명을 초대해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지만 이마저 버겁다는 생각에 결혼식을 포기하고 대신 멋진 신혼여행을 떠났다. 약혼자와 단둘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으로 허니문을 떠난 오코너는 그곳의 한 도서관에서 결혼 서약을 한 뒤 고급 호텔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기면 결혼식을 대신했다.

신혼여행비로 2,000달러를 썼다는 오코너는 “어렵게 모은 돈을 하루 결혼식 대신 더 도움이 될 만한 곳에 쓰기 위해 궁리했다”라며 “내 집 마련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를 결혼식에 다 써버리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결혼식을 생략한 이유를 설명했다.

■웨딩 업계, 스몰 웨딩 상품 선보여

스몰 웨딩 추세에 웨딩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케일 주얼러스’(Kay Jewelers), ‘재일스’(Zales), ‘하레드’(Jared) 등 귀금속 전문점 체인을 운영하는 ‘시그넷 주얼러스’(Signet Jewelers)는 저렴한 약혼반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 실험실에서 제조한 인조 다이아몬드 제품 반지를 선보이고 있다. 꽃집 업체들은 예비부부 측이 직접 장식할 수 있는, 이른바 DIY 키트 결혼식 꽃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 중이다.

결혼식 뒤풀이 행사도 규모가 작아지는 추세다. 하객 수가 적은 스몰 웨딩을 위해 진행자 없이 카라오케 기기와 게임 장비만 제공하는 DJ업체도 늘고 있다. 웨딩 리포트의 맥머레이 대표는 “대부분 웨딩 업체는 수익이 높은 대형 결혼식을 선호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스몰 웨딩 시장에 파고들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달라진 웨딩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결혼식 음식을 책임지는 케이더링 업계도 스몰 웨딩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메인주에서 케이더링 업체를 운영하는 짐 맥카시의 고객 중 하객 200명 이상 고객이 약 20%를 차지했다. 그런데 팬데믹을 거치면 하객 200명이 넘는 결혼식은 5%를 줄고 현재 대부분 케이더링 주문은 하객 100명 미만의 스몰 웨딩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맥카시는 “고급 해산물 위주의 케이더링을 주문하면서 하객 30명에게만 제공한 특별한 메뉴를 요구하는 고객도 많다”라고 스몰 웨딩 트렌드를 설명했다.

■장기 인플레로 결혼식 인식 바뀌어

경제학자들은 장기간 이어진 인플레이션 때문에 소비자들이 재정에 대해 느끼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식료품, 개솔린, 공공요금 등 여러 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미래 지출 계획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특히 주택 가격 급등으로 인해 자신의 재정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텍사스 A&M 대학의 멜리나 팔머 행동 경제학 교수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뻐야 할 결혼이나 내 집 마련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다”라며 “경제적 불확실성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축소 또는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스몰 웨딩 트렌드가 나타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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