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시멜로

2024-07-26 (금)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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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모닥불을 피웠다. 이글거리던 태양은 서산 넘어 요세미티 숲속으로 숨었고, 머리위로 별이 쏟아지는 밤이다. 손주들, 아들부부와 나는 타다닥 소리 내며 빨갛게 타오르는 장작불을 두고 빙 둘러앉아 각자 자기 마시멜로를 굽기 시작했다. 불빛에 비치는 손주들의 상기된 얼굴은 대단한 일을 공모하는 것처럼 심각해 보였다. 긴 쇠꼬챙이에 끼운 마시멜로를 불 가까이에 고정해 놓고 두 손으로 천천히 돌려가며 갈색으로 변하고 크게 부풀어질 때까지 시간을 두고 굽는다. 10살된 쌍둥이 손주들과 아들은 갈색의 아기 주먹 만한 크기의 마시멜로을 구워 냈다. 하지만 일곱살 손녀와 내 것은 검게 타기만 했고 전혀 부풀지 않아 실망으로 울상이 되었다.

“마시멜로를 잘 굽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 제일 없는 것, 인내심이 있어야 돼요”라는 아들의 뜻밖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평소 참을성이 없는 내 자신을 알지만, 아들에게는 어머니로서, 환자에게는 간호사로서 잘 참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내 아들이 지금 한 말을 믿을 수 있겠냐?”하고 며느리에게 말하자 “자녀들이 부모를 잘 알고, 그들은 진실을 말해요”하며 며느리는 제 남편의 편(?)을 들었다. 내 기분이 조금 상한 것을 느낀 아들은 “어머니는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셨어요. 제 말은 어머니가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빠르게 생각하고 일하기 때문에 주위에 좀 느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을 보며 자랐어요”라며 부연 설명을 했다. 내 성격대로 마시멜로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굽지 못했다. 기다림을 못 이겨 불에 넣어 검게 태운 것은 내 인내심 부족이다. 두 아들이 이런 어머니에 맞추며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들 말대로 나도 나름 최선을 다 했고, 그들도 잘 따라주어서 꿈을 이루며 산다고 생각했다. 어제 어퍼폴까지 힘든 등산을 했더니 종아리가 아프고, 오늘 카약할 때 입은 햇볕 화상으로 빨갛게 부은 발등이 불편한 내 마음 한 구석처럼 쓰라린다.

젊었을 때처럼 판단이 예리하지 못하고, 몸도 민첩하고는 거리가 먼 아둔하고 느려졌다.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못하는데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다 보니 자주 넘어지고 사고를 낸다. 원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젊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어간다. 예전에는 노인에게서는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운다고 했지만 요즘은 인공지능이 다 해결해주니 노인에게 물을 일이 없어졌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다. 잘 참는 노력 밖에 없을 것 같다. 이해하고 포용해주며 바른 삶의 본보기로 엎드려 후손들에게 어려운 건널목을 건널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야겠다.


어느 시인은 ‘믿음이 있는 자는 좋은 것을 얻고, 인내하는 자는 더 나은 것을 얻고, 포기하지 않는 자는 최고의 것을 얻는다’고 했다. 남편은 내게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5초만 기다렸다 말하고, 행동하며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서 걸어보라고 조언해준다. 이 기회에 이왕 걸림돌에서 디딤돌이 되자고 작심했으니 믿음을 가지고 잘 참고 견뎌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울창한 숲 속에 어둠이 깊어 지자, 낮 동안 숨어있던 크고 작은 별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제 몫을 다하며 반짝이고 있다. “할머니, 하늘의 별이 많을까요? 땅의 모래가 많을까요” 손자가 다섯 살 때 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 때도 별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오늘 밤도 모래 보다 별이 내 생각만큼 더 많아 보인다.

마시멜로를 굽는 것처럼, 저 밝고 작은 별 같은 후손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고 조심해서 별을 캔다. 별 하나에 바다처럼 넓은 인내를, 별 둘에 우리 할머니의 온유한 마음을. 별 셋에 꽃보다 아름다운 아기의 미소를… 세상이 별처럼 반짝이도록 바구니 한 가득 별을 담아온다.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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