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2024년 ‘위대한 개츠비’

2024-07-1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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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6일 뉴욕링컨센터에서 열린 제77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한국계 여성 디자이너 2명이 토니상을 시상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린다 조가 의상상, 뮤지컬 ‘아웃사이더’의 해나 S. 김(한국명 김수연)이 조명상을 받았다. 드디어 K한류가 K팝, K드라마에 이어 K뮤지컬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작가 F. 스콧 피츠 제럴드(1896~1940)의 동명소설(1925년 출간)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한국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제작해 올 4월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개막됐다.

본인이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가 된 롱아일랜드 그레이트넥 일대를 일부러 찾아갔었다. 전통적 부자가 사는 이스트 에그(샌즈 포인트) 지역을 바라보는, 신흥부자가 사는 웨스트 에그(킹스 포인트) 지역을 차로 돌면서 대저택을 구경했다. 작가가 불빛을 보며 작품을 구상한 해안가가 어디일까도 유추했다.


뉴욕시에서 20마일 떨어진 곳에 해협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던 두 개의 지역, 웨스트 에그의 대저택에 사는 개츠비는 멀리 이스트 에그의 초록빛 불빛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그리워한다. 초록색 빛은 그녀가 사는 대저택 선착장 불빛이다. 한 친구가 ‘소설로, 영화로 계속 나오는 작품을 왜 보고 싶냐?’ 는 말에 ‘토니상 받은 수백 벌의 옷을 보러간다.’고 답했다.

과연, 2024년 ‘위대한 개츠비’ 무대에 나오는 350여 벌의 의상은 대단했다. 데이지가 한번 와주기를 바라며 토요일마다 소문나게 큰 파티를 벌이는 개츠비의 파티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이들의 의상은 화려한 칼러와 스팽클, 레이스 등 디테일이 화려하고 꼼꼼했다. 특히 여주인공 데이지가 입는 드레스 10벌은 치마 아랫부분이 층층이 주름진 스타일로 여성적이면서 우아했다.

1920년대 의상을 멋지게 재현한 디자이너의 정성이 눈에 보이는 의상은 엄청난 제작비가 들었을 것이다. 전체 제작비는 2,500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원래 연극이나 무대 위 의상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싼 원단과 장신구로 분위기만 날림으로 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 무대 의상들은 원단 자체가 고급졌다. 디자이너 린다 조는 서울 출생 9개월만에 부모와 캐나다로 이민했고 현재 뉴욕에서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의상 외에 데이지의 사촌 닉의 작은집, 선착장, 퀸즈 주유소 등등 파란색과 초록색 배경에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부드럽고 순한 빛이 개츠비의 순정과 어우러져 관객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이 1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엄청난 부자 나라가 되지만 전쟁의 허무함, 자본주의가 꽃피던 1920년대 전반부가 배경이다. 부와 이기심, 탐욕이 넘치는 시대로 향락을 즐기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부와 재즈의 시대’, 사람들은 할부로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사기 시작, 노동자가 소비자이자 투자자가 되었고 가정주부들까지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 (재즈시대 이후 1929년 10월29일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온 것도 기억하자.)

2024년은 그때로부터 100년 후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꿈과 사랑, 욕망, 사랑과 배신, 불륜, 빈부의 차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바로 오늘날 세태가 아닌가.
우리는 전쟁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른 코로나19를 겪었고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사람들의 일상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식량재벌, 에너지 기업, 제약분야, 주식, 비트코인 투자자 등은 더욱 많은 자산을 축적하여 부의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생계비 위기, 지구촌 전쟁, 기후 붕괴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위기에도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뮤지컬을 본 날, 폭염으로 맨하탄이 절절 끊었지만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객석이 가득 찼고 이들은 무대를 보며 환호했다. 미국인들에게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우리의 ‘성춘향과 이도령’처럼 최고의 전설적인 작품이다. 시대와 세대, 동서양을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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