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제74주년이 다가온다.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 휴전일까지 3년 1개월 4일, 즉 1,129일동안 한반도를 비극에 물들게 한 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정전협정에 공산측 대표의 한 명으로 서명함으로써 전쟁범죄의 면죄부를 받았다. 이후, 6.25는 김일성의 반대파 숙청과 자신의 체제를 굳히는데 이용되었다.
전범(戰犯)은 전쟁 범죄자(War Criminal)를 말한다. 국제규범에 따라 전쟁범죄로 인정되는 행위를 저질러야 하고, 역시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 재판을 통해 죄가 확정되어야 전범이라 칭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과거의 군주나 장군은 현재의 윤리와 도덕관이 달라 해당 시점의 행위를 전범이라 판단할 수 없다. 시대가 흐르면서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인명을 함부로 살상해서는 안된다는 1864년 제1차 제네바 협약이 이뤄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 보호 및 인권의식이 강조되면서 제네바 협약이 보강되었다.
전범의 현대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일으킨 독일황제 빌헬름 2세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나 전쟁 막판에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신병인도를 거부했고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치 독일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히틀러, 괴벨스 등은 체포 전에 자살해 버렸고 독일 제국의 원수 헤르만 괴링은 교수형을 선고받자 독약 캡슐을 깨물고 자살했다.
그리고 1946년 1월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 천황은 일본 민심을 고려하여 기소되지 않았고 ‘신’의 존재에서 ‘인간’으로 격하되었다. 재판에서 처벌받은 A급 전범들은 처형되어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다른 전사자들과 합사되어 있다.
A급은 평화에 대한 죄, 전쟁을 기획 주도한 인물들이다. 죄의 악질 다수가 아니라 조례를 통해 전쟁범죄(행위)를 분류한 방법이다. 전쟁 주도자, 난징대학살 책임자, 일본군 위안부 창시자, 100인 참수 경쟁 주도자 등이 A급 전범으로 사형되었거나 복역 중 사망했다.
그런데 전쟁범죄 행위를 처벌하려면 일단 재판을 열고 당사자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독일과 일본처럼 패전국들은 전쟁범죄가 낱낱이 수색되어 전범 재판을 받았지만 승전국인 경우 전쟁 범죄는 사소하게 취급되어 처벌받은 일이 별로 없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의 전범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3년째 이어지면서 양측 사상자가 5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국제재판소에 세워야 한다는 비난이 전세계적으로 쏟아졌었다. 그러나 일단 푸틴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을 것이고 ‘침략범죄’의 죄를 물으려 해도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다.
그가 러시아 국가원수로 있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쟁 희생자 가족들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푸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몰아낼 때에야 가능하다. 그의 체제는 여전히 견고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8개월이 지나도 끝날 줄을 모른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최근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지도부에 전범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동시에 반발했다.
이 무더운 여름날, 전쟁이 난 한반도에서 어떻게들 견뎌냈을까? 빗발치는 총탄의 전장에서 생사의 길에 선 젊은이들, 굶고 지치면서 생존에 급급했던 피난민들, 그 공포와 두려움, 트라우마를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할 터인데,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모두 다 처벌받지는 않는다. 제대로 국제법이 작동하려면 정치적인 노력과 의지가 함께 가야 한다. 범죄자를 법정에 세우려면 끊임없이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또 하나, 아무리 대단한 권세와 힘을 지닌 자라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역사는 객관적이고 냉정하며 영원하다. 전범자는 전쟁을 일으킨 자, 평화 대신 불화를 심어준 지도자로 평가될 것이다.
<
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