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읽은 명작-검은 꽃

2024-04-23 (화) 황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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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멕시코 이주 조선인들의 생존 분투기

▶ <김영하 장편소설/ 문학동네>

내가 읽은 명작-검은 꽃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 <검은 꽃> (문학동네 출판)은 1905년 4월 4일 영국 일포드 라는 화물선을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5월 20일 멕시코로 온 한인 노동자 1033명이 유카탄 주 수도 메리다 근교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에서 땀범벅에 피를 흐리며 일하던 모습과 눈물겨운 고난의 생활을 그렸다. 그들은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이국 감독의 엄격한 감시를 받아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909년 계약 만료 후 귀국하지도 못하고 멕시코 각지에서 생존하기위해 분투했던 조선인들의 인생을 담은 수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1905년 2월 황성신문에 난 대륙식민회사의 멕시코 이민자 모집 광고를 보고 제물포로 몰려온 고아 소년 김이정, 대한제국 제대군인 조장윤, 김석철, 박정훈, 고종 황제의 6촌 이종도와 부인 윤씨, 딸 이연수, 아들 이진우, 내시 김옥순, 통역 권용준, 박광순 바오로 신부, 도둑 최선길, 박수 무당, 울릉도 어부 최춘택이다. 이들과 함께 멕시코로 간 한국인 제대군인 200 여명과 나머지는 농민들이 다수였다.
그들은 현지의 마야인 후손들도 힘겨워 피했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힘 없는 사람들로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이처럼 강렬하게 그린 소설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검은 꽃>에서 가혹한 운명과 마주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람 답게 살고자 할 때 비쳐지는 고결한 기품과 육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패배가 자아내는 깊은 슬픔을 저자와 공감한다.


나는 그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지나는지 궁금했고 에네켄 농장도 돌아보고 싶었다. 마침 이 지역에 와싱톤한인교회에서 지난 20여년간 선교 중으로 금년 1월 교인 7인과 메리다로 여행을 떠났다. 휴스턴을 거쳐 저녁에 메리다 공항에 내려 우리는 바로 메리다 시에 있는 Korean Grill에 가서 멕시코 이민 한국인 후손 27명과 정담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이 때 만난 김민서 멕시코 한국이민 기념박물관장의 할아버지 김수봉 씨가 1905년 4월 제물포를 떠나 영국 화물선 일포드 편으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일하러 온 한국인 1033명 중의 한 분이었다. 이날 메리다 한인협회 율리시스 박 전회장과 황 장로의 크신 주 합창과 멕시코 한인 후손 Katya Coreana의 아리랑 과 베사메 무초의 섹소폰 연주가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우리 일행은 멕시코 한인 후예와 태극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메리다 근교에 있는 한 에네켄 농장을 방문해 멕시코 노동자들이 에네켄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120년 전 조선 노동자들이 에네켄 잎을 짤라 오면 이 공장에서 에네켄 섬유를 만들었다고 했다. 마침 일꾼들이 농장에서 짤라 온 에네켄 단을 머리에 이고 가서 컨베이어 벨트로 올리고 있었다.

다른 일꾼들이 이층 벨트에서 에네켄 잎들을 갖추려 동력 분쇄기에 넣었고 롤러 프레스에서 분쇄되어 나오는 에네켄 섬유를 묶어서 당나귀가 끄는 마차로 축구장 보다 더 넓은 들판에 옮겨서 철사 줄에 널어 햇볕에 말렸다.

에네켄 섬유를 잘 말린 후 밧줄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낸다고 했다. 나오는 길에 이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노동자들이 당시에 살았던 허물어진 숙소를 바라보며 그들의 숙명적 애환을 다시 그려보았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 한국판 <검은 꽃>과 영문판 는 미국 공립도서관에도 있고 영문판은Amazon.com으로 구입할 수 있다.
멕시코 한인 후손 비디오는 Han Hwangbo YouTube Video 에서, 에네켄 농장 비디오는Han Hwangbo YouTube Video 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읽은 명작-검은 꽃


황보한

●워싱턴문인회 소설문학회원
●장편소설 <별들의 만남> 보이스 사 펴냄 2000년
●단편소설 <50년 만에 온 행운> 문학의 봄 당선작 2014년

<황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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