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읽은 명작인생 <위화 장편소설>

2024-04-09 (화) 유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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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가

내가 읽은 명작인생 <위화 장편소설>


‘머리카락 하나에 3만 근을 매달아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은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에 관해 쓴 글이다.

이 소설은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작가에게 늙은 농부 푸구이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부잣집 지주인 쉬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푸구이는 기생과 도박에 빠져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하루아침에 가난한 초가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만다. 그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전에는 자신의 땅이었으나 이젠 그 땅의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년여 만에 어머니도 병으로 쓰러졌다. 푸구이가 어머니를 진료할 의원을 부르러 나갔던 시기는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길에서 국민당 군대에 붙들려 전쟁에 끌려가 버린다. 2년 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에게는 아내(자전)와 딸(평사)과 아들(유칭)이 있었다. 딸 평사는 고열로 인한 후유증으로 벙어리가 되었다. 푸구이가 가족들에게 아무런 역할을 못 한 채 살아가던 중에 토지개혁이 시작되어 땅을 분배받게 되었다. 그의 전 재산을 도박으로 갈취해 간 룽얼이라는 자는 악덕 지주로 지목되어 총살당하고 만다. 이렇게 되자 푸구이가 도박으로 땅을 잃지 않았다면 총살을 당한 사람은 바로 자기였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가난해서 아들 유칭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말을 못 하는 딸을 남의 집 식모로 보냈으나 구박을 견딜 수 없어 한밤중에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푸구이는 식구들이 모두 굶어 죽더라도 다 같이 살기로 작정했다. 식량난이 갈수록 심해져서 양식이 떨어졌고 구루병에 걸린 아내는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열세 살 된 아들은 교장 선생에게 수혈을 해주다가 의사가 채혈을 너무 과도하게 해서 죽고, 착한 청년과 결혼한 딸도 아이를 낳던 중에 죽었다. 게다가 투병 중이던 아내마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위조차 일하던 현장에서 사고로 죽고 손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가 준 콩을 너무 많이 먹다가 죽고 만다.

온 가족이 죽고, 죽고, 또 죽고…. 그는 부모와 자기 아내, 두 자식들, 심지어 사위와 손자까지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경이 되니 오히려 모든 일에 초연해진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늙은 소를 한 마리 사서 그 소의 이름도 ‘푸구이’라고 지어주며 남은 생을 함께 하고자 한다. 아마도 그는 소를 자신처럼 평생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치게 될 공동 운명체로 여겼을 것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중국의 국민당, 토지개혁,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그 혼란한 정세 속에서 고통받는 지극히 평범한 개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개혁이고 혁명인지 알 수 없는 무질서한 세상 속에서 삶이란 견디는 것, 운명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깨닫는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총 311쪽인 이 책의 끝 무렵에 노인의 노랫소리가 텅 빈 저녁 하늘에 바람처럼 들려온다.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위화는 현대 중국 문학계의 대표 작가다. 1960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수석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쉰 문학원(중국작가협회 소설 창작반)을 이수했고 1990년 북경사범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31세)에 첫 장편소설『가랑비 속의 외침』에 이어서 두 번째 장편소설이 바로 『인생』(1992)이다. 2019년에 베이징 사범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그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중 세계 독자를 가장 많이 가진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42개국의 언어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내가 읽은 명작인생 <위화 장편소설>


유양희
●수필가, 문학평론가 ●워싱턴문인회 고문
● 팔봉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수상
● 수필집 『워싱턴 민들레』

<유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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