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한국에서 군복무 중일 때 면회 가느라 영동 고속도로를 탄 적이 있다. 지형적 특성 때문인지 유독 터널이 많았다. 금방 통과하겠지 하는 기대와 달리 굽이돌며 이어진 긴 터널도 있었다. 앞뒤가 막힌 어둡고 좁은 터널에서 꽤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우간다에 있느라 아이들의 입대와 휴가를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없었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터널 경험이었다.
뇌종양 치료를 위해 개두술과 감마 나이프 수술을 마친 후 그 후유증을 통과하는 과정이 마치 터널을 하나씩 지나가는 심정과 비슷했다. 탈모, 불면, 기력저하 등이 차례로 앞을 가로막았고, 그때마다 곧 다가올 소망의 시간을 기대하며 버텨냈다. 더이상 터널은 없으리라 방심하던 어느 여름 밤… 제대로 날 가둬버린 어둡고 긴 터널을 만났다.
종양의 영향을 받았던 왼쪽 발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집도의의 언질이 있었던 증상인데 막상 겪어보니 당황스러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땀이 나고 긴장감이 돌았다. 며칠 후,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금방 지나가겠지’ 하는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뒤로 나자빠졌고 왼쪽 다리와 팔에 발작 증세가 일어났다. 캄캄한 밤에 내의지와 상관없이 공중에서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는 왼쪽 팔을 보았다.
아뿔싸! 일어날 수 있다는 경련이 이런 것이었다니… 뒤집어진 바퀴벌레가 허우적거리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태풍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정신없이 요동쳤지만, 산산조각 흩어진 기운을 필사적으로 끌어 모아 절박하게 여덟 글자를 외쳤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놀랍게도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고 팔다리가 다시 나의 통제 안에 들어왔다. 상황이 수습되자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 깊숙한 샘에서부터 터져 나온 눈물이 울음이 되어 나를 삼켰다. 놀람, 서러움, 비통함… 뭐가 우선이랄 것도 없이 온통 뒤섞여 몸과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내 울음의 가장 큰 이유는 몸소 체험한 빛의 위력에 대한 벅찬 감격이었다.
터널 속 짙은 어둠이 아무리 위협적일지라도 터널은 끝이 있고 다가오는 빛을 막아서지 못한다. 인생 여정 곳곳에 매복한 어둠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지만, 어둠보다 더 크고 강력한 빛이 있기에 오늘도 당당하고 용기 있게 두려움과 맞선다.